주님 공현 대축일 -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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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오늘은 아기 예수님이 온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나심을 기념하는 공현 축일이다. 첫 독서에서 이사야는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라고 예언한다. 예수님의 공현으로 어두운 세상에 빛이 비치는 것이란 말씀이다.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는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고 전한다. 주님의 빛을 받은 모든 민족이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의 상속자가 된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공현은 예수님이 "만민의 빛"(Lumen Gentium)으로 드러나신 사건이다.
모든 이를 구원으로 초대하는 공현의 신비를 복음은 동방박사 이야기를 통해 전해준다. 이 이야기는 신비한 상징들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길을 일러준다. 박사들은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다"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여기서 ‘동방’은 특정 국가 이름이 아니라, 그 당시 서쪽 끝으로 여겼던 이스라엘의 동쪽에 있는 나라들, 즉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상징한다, 또한 '박사(magoi)'는 공부를 많이 한 학자나 신통력 있는 마술사가 아니라, 진리를 찾는 이들, 인생이 먹고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믿고 그 진리를 찾는 이들, 사람답게 사는 길을 찾는 이들을 말한다(베네딕토 16세).
교회 전승은 세 명의 박사를 젊은이와 중년과 늙은이, 혹은 백인과 황인과 흑인으로 그린다. 젊음과 중년과 늙음, 흰색과 황색과 검은색, 즉 인간의 모든 영역이 예수님을 경배한다는 상징이다. 대개 우리는 주님께 바르고 예쁘고 깨끗한 것만 보여드리고 싶고, 어둡고 부끄럽고 못나고 부족한 것은 감추려 한다. 그러나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내 안에 들어있는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보람과 후회, 밝음과 어두움을 구별하여 감추지 말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드러내라는 뜻이 담긴 이야기다.
이 동방의 박사들은 별빛을 따라서 집을 떠나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님 만나기를 원하는 모든 신앙인에게 길을 인도하는 별이 필요하다. 우리를 이끄는 별빛은 무엇일까? 고백자 막시무스 성인(580~662)은 “신앙인에게 그 별은 곧 말씀”이라고 가르친다. 말씀이라는 별이 어두운 우리 앞길을 비추고, 이기적인 마음을 씻어주며, 나아가 말씀의 잔치인 미사에서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사람이 되신 말씀을 받아 모셔서 말씀과 하나가 되고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별을 따라가는 삶이다.
우리를 주님께 이끄는 별빛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별은 밤하늘을 비춘다. 별은 어두울 때 집 밖으로 나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야 보인다.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이 당장에 이득이 되는 행위 같지는 않다. 추운 겨울밤에 집 밖에 나가 별을 보는 것보다는 따뜻한 집안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방에만 있으면 별빛을 볼 수 없다. 눈앞의 것만 보고 하늘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별빛은 보이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기도 힘들어진다.
어둡고 추울수록, 힘들고 어려울수록, '나'라는 이기심의 집 밖으로 나와야 별을 본다. 집안 걱정, 건강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어두움 가득한 자기라는 집 밖으로 나오고, 제 식구, 제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기적 자아에서 나와 영원한 것을 향해 고개를 들을 때 별이 보인다. 그때 맑은 별빛에 마음이 씻어지고 밝은 빛 속에 가야 할 인생길의 방향을 찾고, 그 끝에 주님을 만나는 참된 행복을 누린다. 사람을 사랑하셔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만나는 길이 열린다.
그 별빛은 최종적으로 동방박사들을 아기 예수님께 이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목적지다. 그곳에 도착하자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다. 황금은 금빛 태양과 같은 진정한 왕을 상징하고, 유향은 신에게 올리는 분향 재료로 하느님의 영원하심과 거룩함을 상징하며, 몰약은 시신에 바르던 약재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한다. 우리가 주님께 드릴 예물은 거창한 성과나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과 소망, 고통과 상처다. 황금처럼 빛나는 사랑, 유향처럼 피어오르는 영원을 향한 소망, 몰약을 바른 듯한 우리의 상처와 고통을 봉헌하자. 황금 같은 사랑을 주님께 봉헌하면 우리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다. 영원하고 거룩하신 하느님께 유향을 드리듯 소망을 봉헌할 때 지금 여기 나의 현실이 거룩해진다. 몰약처럼 쓰라린 아픔과 상처를 주님께 봉헌할 때 고난을 겪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를 치유하신다. (A. 그륀)
예수님을 만난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고 말씀은 마무리된다. 이 말씀은 신앙의 여정을 상징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다른 길로 가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긴 표현이다. "이는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 비록 같은 환경에 있을지라도 사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대한 판단 기준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교종 프란치스코) 예수님을 만난 후 포악한 헤로데의 길, 즉 권력과 욕망과 음모로 가득 찬 세상의 길로 되돌아가지 말고, 아기의 길, 즉 힘없고 가난하더라도 사랑의 길을 가라는 말씀이다.
세상에는 거짓과 무도한 권력과 악행이 힘이 세 보인다. 겉보기에는 헤로데가 아기보다 힘이 세 보이고, 아기는 헤로데에 의해 죽을 것 같다. 그러나 오래전 헤로데는 죽었고, 아기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안에 현존하신다. 그 아기가 세상을 비추는 빛이시다. 신앙인은 지상의 삶에 묶여 땅만 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구원의 별빛을 따라 순례하는 이들이다. 그분께 희망을 두었기에 오늘도 우리는 별을 따라 여기 모였다. 이제 동방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 - 우리 삶의 사랑과 소망, 고통과 상처를 봉헌하며 주님을 경배하자. 우리 가슴에 "기쁜 빛이 가득해질 것"이다.
[출처] 말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