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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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 -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우리가 나누는 새해 인사처럼, 오늘 성경은 복을 빌어주는 말씀을 들려준다. 첫 독서 민수기는 사제들이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라는 하느님의 약속을 전한다. 이처럼 축복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후대에 이르러 하느님의 이름은 절대적 거룩함과 초월성을 나타내므로 함부로 발음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게 되었다. 게다가 이름을 부르면 상대를 “내가 다룰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야훼라는 하느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고, 비밀 암호처럼 아도나이, 곧 ‘주님’이라는 호칭으로 대신 불렀다.
그런데 복음은 전혀 다른 소식을 전한다.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이제 하느님의 이름은 더 이상 발음할 수 없는 비밀 암호가 아니라, ‘예수’라는 이름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 이름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지닌 한 아기로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이다. 이는 사제의 말로 전해지던 구약의 축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축복이다. 하느님은 이름뿐 아니라 얼굴과 몸과 마음을 지닌 분으로 태어나 우리 가운데 머무르게 되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라고 간청하던 화답송 시편의 갈망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이신 예수님을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둘째 독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으로 태어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다고 선포한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신 예수님의 영, 즉 성령을 통하여 이제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 이렇게 첫 독서에서는 성부의 축복이, 복음에서는 성자의 축복이, 둘째 독서에서는 성령의 축복이 드러나며, 삼위일체의 강복이 새해 첫 아침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 강복을 받는 비결을 복음은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를 마주하며, 마리아는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루카 2,51). 마리아의 이 태도를 프란치스코 교종은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마리아는 자신의 삶을 자율적으로 이끌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이 자신의 삶의 여정의 고삐를 잡아주시길, 그리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자신을 인도하시길 기다렸습니다. …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결국 마리아의 가슴 깊은 곳에서 되새겨집니다. 곧, 기쁨으로 가득한 날들, 인생의 가장 어두운 순간들, 또한 구원이 어떤 길을 통과해야 하는지 알아듣기 너무 힘든 순간들 등 모든 것은 결국 마리아의 마음에 남아 기도의 체를 통과해서, 기도에 의해 변화됐습니다. 그것이 동방박사의 선물이든, 이집트 피난이든, 그 끔찍한 수난의 금요일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는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하느님과의 대화 안으로 가지고 가셨습니다. 이렇게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마리아의 마음은 비할 데 없이 빛나는 진주와 비슷합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인내롭게 받아들임으로써 다듬어지고 연마된 진주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2023.11.18)
새해 첫날을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내며,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이 성모님의 마음이다. 하느님 말씀에 열린 마음, 고요한 마음, 순종하는 마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즉각적인 감정으로 반응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 그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곰곰이 되새길 때, 우리는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비로소 아버지의 축복이 드러난다.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은 우연히 얻는 횡재가 아니다. 삶에서 마주치는 일이 좋든 나쁘든,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며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섭리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드러나는 복이다. 그것이 우리 영혼이 성모님 마음처럼 빛나는 진주가 되는 축복이다.
오늘의 사회는 불안하고, 사람들은 험악하고, 먹고살기가 점점 더 어렵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 앞에 낙담하여 주저앉지 말고, 감정에 휘돌려 분노와 우울과 걱정의 노예가 되지도 말자.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지니고,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마음 깊이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길" 때, 하느님이 우리 “아빠, 아버지”이심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참된 축복이다.
오늘 대축일에 마리아가 받은 '천주의 모친'이라는 복이 그렇게 내린 복이었다. 성모 마리아는 천주의 모친이 되기 이전에 "주님의 여종"으로 하느님 앞에서 말씀을 자신 안에 받아들여,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김"으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새해 첫날, 우리도 성모님과 같은 마음으로 살기를 다짐하자.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는 축복을 청하자. 그리고 가까이 있는 이웃이든 멀리 있는 이웃이든, 모두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형제자매임을 기억하며, 아버지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서로 축원하자.
[출처] 말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