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 오늘 구원자가 태어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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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 오늘 구원자가 태어나셨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오늘 밤은 성경이 증언하듯 빛으로 가득 찬 밤이다. 첫 독서에서 이사야는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라고 예언한다, 아기 예수님이 바로 이 빛이시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라는 첫 독서의 예언이 복음에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천사의 알림으로 성취된다. 사도 바오로는 이 사건을 두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라고 전한다. 오늘 밤, 우리는 빛으로, 구원자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보자.
복음은 마리아가 "첫아들을 낳았다"라고 전한다. 성경에서 첫아들이란 단순히 여러 아들들의 맏이라는 뜻이 아니라, 본래 하느님께 속한 존재를 가리킨다. "첫아들은 모두 나에게 봉헌하여라"(탈출 13, 1-2); "너희 자식들 가운데 맏아들은 모두 대속해야 한다"(13,13)라는 계명에서 드러나듯, 첫아들은 하느님께 속한 존재이므로 봉헌과 대속의 대상이다. 마리아가 첫아들을 낳았다는 말은 예수님이 하느님께 속한 분이라는 신앙 고백이다. 같은 맥락에서 로마서에서 바오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이"(8, 29)라고 부르며,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콜로 1, 18)라고 선포한다. 새 창조의 시작이며 죽음을 이기신 맏이로서, 하느님께 속한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셨다. 이로써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런데 인간의 구원자인 첫아들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신다. 마구간은 출산에 어울리지 않는 황량한 장소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누워 계신다. 초대교회 이래 이콘들은 아기 예수를 마치 시신을 염한 것처럼 포대기에 싸인 모습으로 묘사해 왔다. 그리고 예수님을 누인 구유는 동물의 여물을 담는 곳이다. 그곳에 하늘에서 내려온 빵, 인간의 구원자로 참된 양식이 되실 분이 염한 시신처럼 누워 계신다. 훗날 빵으로 먹히러 오신 분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실 운명이 이미 이 밤에 암시되고 있다.
복음은 이어서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고 전한다. 강생의 첫 증언자는 목자들이었다. 그들은 따뜻한 집안이 아니라 추운 들판에서 밤을 새우던 이들이었다. 중심부 내부자들이 아니라 주변부 변두리 사람들이 하느님 사랑의 첫 목격자가 된다. 이렇게 후일 선포될 가난한 이들의 행복이 예시된다. 그리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는 찬미가 울려 퍼진다.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란 누구일까? 예수님의 세례 때 들려온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 22)라는 말씀에서 밝혀지듯,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은 먼저 예수님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아들답게 살아가는 사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그들이다. (J. 라칭거)
세상을 돌아보자.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불안과 걱정의 한숨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분노와 두려움 속에서 어둡고 차가운 세상을 견디며 살아간다. 그렇게 애써 버티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면 허탈함만 남는다. 바로 그런 우리에게 나타난 “하느님의 은총”은 아무 힘도 없이 말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이다. 가난하게 오신 하느님이다. 하느님의 가난함은 하느님의 사랑 방식이며 성탄의 신비다. 가장 작고 연약한 모습으로 오심으로써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의 빛이 되시고, 버려진 마구간에 핏덩이로 오심으로써 막다른 골목에 몰린 우리의 어둠을 밝히신다. 내세울 것 없어 부끄러운 우리, 변두리에서 서성이는 우리, 드릴 것 없어 빈손인 우리, 사는 것이 버겁고 앞길이 보이지 않는 우리에게 주님은 연약함과 가난함으로 다가오셔서 함께 계신다.
그러기에 주님의 오심은 그 자체로 사랑이다. 그렇다.
"하느님의 가난하심, 그것은 내게 그분의 전능하심보다 더 큰 위안을 주십니다. 하느님의 가난하심은 내게 그분의 전지하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내게 그분의 엄위하심보다 더 가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가난, 바로 여기에 사랑의 가장 높은 단계가 있습니다." (Carlo Carretto)
이 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의 상태가 어떠하든 우리는 이미 사랑받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성탄을 기뻐해야 할 이유다. 주님은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우리의 부족함 때문에 더욱 우리를 사랑하신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를 빛으로, 참 기쁨으로, 새로운 삶으로 이끈다. 성탄의 신비는 한마디로 “인간적인 것이 거룩해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이블린 언더힐). 거룩함은 하느님의 본성이지만, 이제 인간의 삶 전체―태어나고 먹고 자고, 만나고 헤어지고, 웃고 울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모든 과정―가 하느님 안에서 거룩해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느님께서 세상의 구석구석에 살아 계시게 된 사건이 바로 성탄이며, 그래서 사람들은 캐럴을 듣고 거리를 장식하며 기뻐한다.
아기 예수를 보자. 새로운 계약의 궤인 구유에, 커룹(대천사) 대신 온 세상 사람들을 상징하는 소와 나귀의 경배를 받으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아들로 오신 분. 가난과 추위 속에 변두리에 깨어있던 이들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을 바라보고 경배하자.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계신 "우리를 위해 태어나신 한 아기"를 경배하자. 추위에 한밤중에 약하고 가난하게 나신 분, 우리와 같아지신 아기 예수께 "당신은 우리 주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어둠을 없애고자 어둠 속에 오신 빛, 우리의 약함을 지고자 연약하게 오신 분, 당신은 우리 주 하느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자. 그때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벌거벗은 채 태어난 것은 네가 자신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내가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네가 나를 유일한 부로 여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내가 구유에 태어난 것은 네가 모든 환경이 거룩하다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약하게 태어난 것은 네가 나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사랑으로 태어난 것은 네가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밤에 태어난 것은 네가 어떤 상황에서도 빛을 비추는 나를 믿게 하기 위해서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네가 '하느님'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내가 박해 중에 태어난 것은 네가 어려움을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내가 단순하게 태어난 것은 네가 복잡한 것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내 생명 안에 태어난 것은 너희 모두를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익명, 성탄 묵상)
[출처] 말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