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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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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 다해 –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5-11-17 09:10   조회: 11회

본문

연중 제33주일 다해 –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말세, 혹은 세상의 종말이라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는다. 신앙이 있든 없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도덕이 무너지며 사회가 어지러울 때 사람들은 말세라고 말한다. 홍수나 대지진과 같은 큰 재난을 겪을 때면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해 종말의 비밀을 자신들만 안다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이비 집단도 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종말에 대해 예수님께서 직접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하느님의 집으로 여겼던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며 이렇게 경고하신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라고 하신다. 다시 말해 종말은 외부의 무서운 상황이나 눈에 보이는 징조로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전염병, 참사, 전쟁, 태풍, 지진 같은 일들을 겪을 때마다 이것이 종말인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겪는 재앙은 종말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재앙을 만났을 때 우리는 종말을 두려워하기보다 흔들림 없는 믿음을 증언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성 루이지 곤자가가 어린 시절에 성당 마당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누군가 “만약 2분 후에 종말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물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성당으로 달려가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인은 “이렇게 노는 것 역시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고,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니까 계속 놀겠다.”라고 대답했다. 하느님 현존 안에서 사는 사람은 종말이 온다 해도 두려워하거나 무언가 특별한 일을 서둘러 할 필요가 없다. 하던 일을 충실히 하며 그대로 하느님께 나아가면 된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라는 말씀은 종말이 미래에 고정된 사건처럼 예정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물론 역사의 주권은 온전히 하느님께 있지만, 그분은 전제군주처럼 제멋대로 세상을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하느님은 각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인간의 자유를 억누르지 않으시고, 은총으로 부르시며 사랑으로 완성시키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여기 일상에서 주님을 증거한다면, 공을 차며 놀던 중이든, 살림하던 중이든 종말은 구원의 순간이 된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산다면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현재를 충실히 산다면 종말은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된다.


​종말을 위협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들도 있다. 성경에서 ‘악마 diabolos’는 ‘분열시키는 자’, ‘속이는 자’를 의미한다. 유사 종교, 가짜 뉴스, 무심코 나누는 뒷담화가 만약 하느님과 우리를 갈라놓고 공동체 안에 분열을 가져오며, 개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면 그것이 바로 악마다. 이러한 소문과 분란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늘의 삶에 충실하며 사랑과 희망을 지키고 믿음을 증거하라는 것이 복음의 호소다. 참된 자유와 진정한 해방, 온전한 빛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사랑이 결국 승리한다는 희망이 바로 종말의 참된 의미다.


​사목헌장(39항)은 종말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는 땅과 인류가 완성되는 때를 모르며, 우주 변혁의 방법도 알지 못한다. 죄로 이지러진 이 세상의 모습은 반드시 사라진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정의가 깃들이는 새로운 집과 새로운 땅을 마련하시리라는 가르침을 우리는 받고 있다. 그 행복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평화의 모든 열망을 채우고 또 넘칠 것이다. 그때에 사랑과 그 업적은 남을 것이며, 모든 피조물이 허무의 종살이에서 해방될 것이다. … 이 지상에 그 나라는 이미 신비로이 현존하며, 주님께서 오실 때에 완성될 것이다."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다. 그리고 그 나라는 우리의 일상, 우리의 선택에 의해 자라난다. 이러한 종말을 앞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바오로 사도는 둘째 독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당시 일부 신자들이 ‘예수님이 곧 오실 텐데 애써 일할 필요가 있나?’, ‘예수님께서 구원을 주실 텐데 무엇 때문에 노력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태만에 빠진 것을 바로잡으신 말씀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종말을 두려워해 현실을 포기하거나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다. 믿는 이들은 지금 여기에서 충실하게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며, 희망을 품고 종말을 증언하는 사람들이다. 


​“영원은 언제 시작되는가? 오늘, 지금, 여기서 시작된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고 말씀하시고, 바오로는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 6,2)라고 전한다. 그리스도교적 희망에 따라 산다는 것은, 저승에서의 완전히 다른 세상을 꿈꾸기에 이 세상의 현 상태에 그저 만족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영원한 삶을 지향한다는 것은 세상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깊은 애정을 의미한다. 새 세상이 시작되는 곳은 바로 이 세상 한가운데이며, 그 외의 어디도 아니다.”(G. 로핑크)


종말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이다. 세상의 악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 증오에 대한 사랑의 승리, 미래의 불안에 대한 현재의 충실함의 승리다.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을 따르지 않고, 주님께 충실하여 사랑을 실천할 때 이루어지는 승리가 종말이다. 세상을 이기신 분은 예수님을 죽인 어둠의 세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당신 생명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이시다.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복음환호송)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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