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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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월요일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업소, 착한 가격, 착한 아이 등등 착하다는 표현은 흔하다.
복음에서 착한 목자는 어떤 의미일까? 그저 "마음 좋은" 목자? 혹은 윤리적으로 "선하고 올바른" 목자?
"착한"으로 번역된 원어(그리스어)는 "칼로스(kalos)"로, "아름다운, 이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도덕적으로 올바르다는 의미의 '선함'은 ‘아가토스’(agathos)'를 사용한다).
'착하다, 선하다'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속성을 나타내는데,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1, 티모 4,4), 하느님의 말씀(로마 7, 12), 하느님의 은총(로마 8,28) 등을 두고 쓰인다.
"착한 (kalos)"이라는 형용사는 복음에서 수동의 의미로 쓰인다(마태 12, 33 "좋은 열매" 참조).
이 형용사 앞에 정관사가 붙었으니 예수님만 "유일하게 착한 목자"라는 뜻이다.
예수님만이 하느님의 아름다우심을 받아 전하시는 목자, 하느님을 드러내시는 목자라는 의미로 들린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여기서 "안다"는 동사는 일반적 지식을 뜻하는 oida가 아니라,
깊은 사랑을 주고받는 앎, 온전히 받아들임을 뜻하는 ginosko를 사용한다.
예수님과 그분을 믿는 이들은 온전히 받아들여진 앎의 관계다.
그 관계의 원형이 하느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님의 관계임을 일러주신다.
예수님과 아버지의 사랑의 관계, 삼위일체적 관계에 믿는 이가 참여하는 신비를 전하시는 말씀으로 들린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예수님은 내게 누구이신가?
하느님과 하나이신 분, 나를 아시고 온전히 받아들이신 분,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
그분이 나의 목자라는 기쁜 소식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