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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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목요일
요한 13,16-20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독서)
구세사 전체는 하느님께서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는 과정이었음을 바오로가 전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는 거절과 반항이 늘 뒤따랐다.
- 이집트에서, 시나이 산 아래서, 사막에서, 가나안에서, 왕국을 이루고도, 나라가 망해 유배를 가면서도 ...
이런 과정 끝에 오신 구원자 예수님을 사람들은 어떻게 맞아들였을까?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 (복음)
사람들의 거절과 반항은 여전했고 그 정점에 유다가 있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맞아들이기가 어찌 이리 힘들까?
거절과 반항 없이 주님을 맞아들이는 길은 어디 있을까?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구세사의 의미는 죽음과 부활에 의해서 드러난 신비였다.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통하지 않고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이해하지 못하고 맞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의 고정 관념에 죽고 주님께서 파견하신 이들의 선포를 맞아들이는 이들이 부활을 체험한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말씀을 믿음으로 체험한 이,
죄에 죽고 은총으로 부활하는 세례를 체험한 이는 주님을 보내신 하느님을 맞아들인다.
이렇게 하느님과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이들은 이제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성화(聖化 Sanctificatio)를 신화(神化 Deificatio)라고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99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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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에 대한 우리의 순명은 큰일에서뿐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단순히 이렇게 말씀드립시다.
'네, 주님 당신께서 제게 주시는 것은 무엇이나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함에 이르는 단순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너무 복잡하고 까다롭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대단히 특별한 것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거창한 것에 대한 이해가 아니고 단순한 받아들임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고, 그분께 헌신했음을 의미하는 전적인 봉헌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나를 어디에 놓든지 상관없습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도구로 쓰실 수도 있고 안 쓰실 수도 있습니다.
나는 전적으로 주님께 속해 있기에 나를 어떻게 하시든지 문제 삼지 않는 것입니다." - 마더 테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