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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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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 다해 -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5-03-24 08:23   조회: 582회

본문

사순 제3주일 다해 -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살아가며 누구에게나 재앙이 닥친다. 불의의 교통사고나 중병이나 파산 등 갑자기 재앙이 닥치면, 남의 일이면 염려하고 말지만 자신의 일이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왜 나에게 이 큰 시련이 닥치냐고 분노하거나, 세상이나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신앙인들은 믿음이 흔들리거나, 내가 잘못 살아서 하느님이 벌을 내리신 것 아닐까? 하고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오늘 복음은 신심 깊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다가 빌라도에게 학살당한 사건이 배경이다. 당시의 대중 신앙에 의하면 모든 불행은 죄의 대가인 벌로 여겼다. 따라서 성전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은 죄인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더 나아가 '재난을 당하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의인이다'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오늘날도 재난을 당한 이들은 죄가 많아 벌받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남의 재난을 보며 은연중에 자신은 의롭고 선하거나 복이 많아 벌을 받지 않았다고 자만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신다: "아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벌받은 것이 아니고, 재난 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죄가 없어서 불행을 면한 것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남의 재난을 보며 안심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그 사건 속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라는 말씀이다.

 

재앙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사건을 이전의 방식과는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 즉 자신의 입장이나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느님의 시선으로 사건을 헤아려야 한다. 이 전환, 자신에게서 하느님께로 전환이 회개다. 예수님은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라고 거듭 이르시면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려주신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에게 기회를 주듯,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신다는 말씀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하니 어서 하느님을 찾으라는 초대다.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오로는 "(회개하지 않고 투덜대던 사람들이 멸망한)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이므로, (자기 발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라고 둘째 독서에서 당부한다. 자기 발로 서 있다는 생각을 되돌려, 내가 서 있는 것, 내 삶의 모든 것이 하느님 은총임을 깨닫고,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이 회개다.

 

랍비 바룩의 손자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었다. 손자 아이는 술래인 친구가 자기를 찾을 것으로 믿고 한자리에 오래 숨어 있었다. 아이는 한참 만에 술래인 친구가 자기를 찾지 않고, 집으로 가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헛되이 숨어 있은 셈이 되었다. 그는 서재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울면서 자기 친구를 비난했다. 이야기를 듣던, 아이의 할아버지 랍비 바룩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도 내가 숨어 있는데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구나' 하고 말씀하신다." (A.J. 헤셀).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놀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당신을 찾기를 바라고 계시지만, 술래잡기를 하다 말고 친구를 버려둔 채 집으로 돌아가듯,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버려둔 채 자기 욕심을 채우러 떠나버린 세태를 풍자한 이야기다.

 

헨리 나웬 신부는 죽기 전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자기가 인생에서 하느님을 찾고자 노력한 줄 알았는데, 거꾸로 하느님께서 자신을 찾고 사랑하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통찰을 남겼다. 즉 신앙은 "내가 어떻게 하느님을 찾을 것인가?"가 아니라, "나를 찾으시는 하느님께 어떻게 나를 드러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따라서 삶에서 마지막 문제는 "어떻게 내가 하느님을 사랑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고백한다. 나를 기다리시는 하느님께 돌아감이 회개요,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임이 진정한 참회다. 회개가 필요한 이유는 회개를 통해서만 하느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오늘 첫 독서는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을 만나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모세는 자기 힘으로 동족을 구하다 실패하여 광야로 도망쳐 양을 치다가, 불타는 떨기(가시덤불) 속에서 주님을 만난다. 매우 상징적 장면이다. 성경에서 가시덤불은 쓸모없는 것들 - 마음의 메마름, 완고함, 황량함, 허무, 무시당한 상처의 상징이다. 가시덤불처럼, 쓸모없는 상처 덤불 같은 내 인생이 실패한 듯 보이지만, 하느님이 그곳에 현존하시면 생기 넘치는 불꽃이 타오른다. 그런데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이 괴이한 상황은 하느님의 현존이 우리 삶에 어떤 뜻을 지니는지 암시한다. 가시덤불은 불에 타면서도 그대로 남아있지만, 이전과 달리 하느님의 광채로 빛난다. 내 삶이 무가치한 가시덤불 같지만, 하느님을 만나면 "불에 타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처럼 환하고 따뜻하게 빛난다. 하느님과의 만남이 가져오는 놀라운 변화다. 하느님을 찾아야 할 이유, 회개할 이유가 여기 있다.

 

그 상황에서 하느님은 모세에게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라고 이르신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삶의 현장이 거룩한 곳이라는 말씀이다. 남에게 닥친 재앙을 보며 자기는 의인이라 벌받지 않았다고 자만하지 말고, 자신에게 닥친 재앙에 내 인생이 가시덤불이 되었다고 낙담하지도 말라는 말씀이다. 신발을 벗듯 솔직하게 주님 앞에 나가(회개), 참으로 경건하고 겸손하게 살라는 말씀이다. 세상은 자기 생각만 하고 제 이익만 챙기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나서는 곳이라는 말씀이다.

 

모세 앞에 나타나신 하느님은 "있는 나" , 우리를 위해 "있는 분", 우리와 함께 "있는 분"이다. 그분은 당신을 구체적으로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라고 일러주신다. 하느님은 뜬구름처럼 하늘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내 조상과 함께 계셨고, 나와 관계를 맺으시는 분, 나의 모든 일상과 관련이 있는 분이라는 말씀이다. 이 하느님이 우리를 찾으신다. 이분께 돌아가는 회개로, 이분을 만나는 은총으로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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