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목 -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본문
사순 제2주간 목 -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복음)
출생에 의해서든, 사회 구조 때문이든, 능력에 의해서든 세상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가지고 있는 권력이나 재물의 크기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할 때 발생한다.
인간의 본래 품위는 동등하지만, 가난하고 배운 것 없고 내세울 것 없으면 차별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우주의 주인이시고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한 자녀다.
하느님 편에서, 이 평등이 살아서 이뤄지지 못했으면, 죽은 후에라도 이루신다는 뜻으로 들린다.
인간 편에서, 살아서 타인을 차별하면, 죽어서 그 차별의 구렁을 넘을 수 없다는 말씀이 이어진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무엇이 그 큰 구렁을 만들었을까?
부자는 자신의 재산에 인생을 의지하다 보니 더 이상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자비가 필요 없다고 여길 때 하늘로 연결된 길이 막히고 구렁이 생긴다.
재물이든 명예든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다른 것이 개입하여 관계가 가로막힌 상황이 구렁이었다.
구렁이 생기면 편안한 나와 가난한 라자로가 같은 하느님의 자식이라는 믿음을 잃어버린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분"은 예수님이다.
구렁을 넘어설 길은 죽은 이들 가운데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데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분명히 드러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마음으로 가난한 이나 부자나, 지금 여기서 차별 없이 형제로 존중할 때,
깊은 구렁이 없어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께서 우리를 품에 안으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독서)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