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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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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예식 다음 금 - 내가 좋아하는 단식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5-03-07 08:54   조회: 673회

본문

재의 예식 다음 금 - 내가 좋아하는 단식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독서)

 

말씀의 배경은 바빌론 유배에서 귀환 후 이스라엘이 겪는 절망적 상황이다.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달라진 것도, 나아질 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느님조차 서먹하기만 했다.

백성들은 기도와 단식을 통해 하느님을 경배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불의가 득세한다.

이 상황에서 하느님은 이사야를 통해 기도나 단식의 뿌리가 어디 있는지 전한다.

사회적 불의를 외면하고 정의와 자비가 결여된 단식은 하느님과 관계없는 헛수고라는 말씀이다.

지금도 귀의, 구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늘었지만 사회에는 불의가 여전하다.

거짓을 일삼는 종교와 하느님께 나아가려는 이들에게 억압과 멍에를 씌우는 종교인들을 보며

사람들은 환멸을 느끼며, "자기희생 없는 종교는 제거되어야 할 사회악이다."(간디)라고 한탄한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복음)

 

복음의 단식 논쟁은 이사야의 외침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는지 보여준다.

단식 논쟁을 다루는 복음의 핵심은 "신랑", 곧 예수님이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 - 신랑이 친구로서 나를 초대한 자리에서 슬퍼하며 굶지 못한다.

"신랑을 빼앗길 날" - 나를 초대한 내 친구가 피땀을 흘리며 죽는데 밥이 넘어가나?

신랑, 즉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숨이 넘어가게 그리울 때, 어떻게 무얼 먹을 수 있는가?

그것이 단식이라는 말씀은 단식이 법규 이전에 인격적 관계에 바탕을 둔 사랑이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단식, 혹은 금욕이란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고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지닌다.

 

"단식은 본디 모든 구원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마음을 온전히 여는 것이다." (주석성경)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단식, 하느님께서 반기시는 단식은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 예수님은 이를 위해 세상에 오셨다(루카 4, 18-22 참조).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 예수님은 처음에는 빵을, 마지막에는 당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셨다.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 집으로 초대하셨다(요한 14,2 참조).

결국 예수님의 삶 자체가 단식이었다.

삶 자체가 단식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단식하라는 말씀을 듣는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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