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9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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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9주간 수요일
마르 12,18-27
그분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후사를 이어주기 위해 죽은 남편의 형제와 혼인한다는 역연혼(수혼제, 신명 25, 5-10)은
혼인을 개인의 일이 아니라 가족 간의 결합으로 보았던 구약시대의 풍습이었다.
그 제도를 빌미로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주장을 합리화하려는 사두가이들의 질문은 상식 밖으로 보인다.
상식 밖의 황당한 일은 사두가이들의 질문에만 나타나지 않고 오늘날도 벌어진다.
자기주장 관철을 위해 성경이나 하느님을 불러대는 모습이 그것이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종교인들도 이해 못 할 짓을 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랬을까? 본질을 놓쳤기 때문 아닐까?
본질을 놓치고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
"조화롭게 사는 데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말라.
둘째, 모든 것은 다 사소하다." (리처드 칼슨)
본질에서 벗어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면 신앙의 기쁨과 자유를 빼앗긴다.
일상에서 감사와 평화가 아니라 허탈과 상실감, 때로는 분노에 빠진다.
어떻게 이 구렁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예수께는 사두가이들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신다.
모든 것을 사소하게 보는 해방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닌 산 이들의 하느님께로 시선을 돌릴 때 다가온다.
죽은 이들에게 묶여 끙끙대지 말고 본질을 벗어난 집착에서 해방되어,
살아계신 이의 하느님께 눈을 돌리고 그분을 따라 살아있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은 "하늘에 있는 천사 같은"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라는 초대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