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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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일 가해 -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며 주신 말씀의 끝부분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가 되려면 부모와 자식을 비롯하여 자기 자신까지도 포기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이르신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주님을 따르려는 이의 자격은 타고난 소질도 아니고 지식이나 재력, 건강도 아니다. 결단을 내리는 태도다. 제자들이 내려야 하는 결단은 예수님 앞에서 내려야 하는 결단이며 예수님을 택하겠다는 결단이다. 즉 ‘추종의 결단’이다. 그 결단은 전적인 포기를 요구한다. 자아 포기와 결단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 죽음이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하느님을 위한 선택에 자기의 목숨까지 바치려는 결단을 내린 이가 참된 제자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가신 길의 일부가 아니라 그 길을 온전히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분을 따르고자 한다면 십자가의 죽음을 감수해야 한다. 그 십자가의 죽음은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한 자아 포기, 죽음과 새로운 삶이 세례다. 사도 바오로는 세례를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우리가 참여하는 행위로 설명한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로마6, 3-4: 제2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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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는 수난과 죽음이다. 예수께서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두시고 세례라고 표현하신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마르 10, 38)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루카 12, 50)
세례는 또한 새로운 창조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루카3, 21-22). 세례 때에 들어가는 물은 창세기에서 혼돈을 상징한다. 그 위에 바람으로 나타난 하느님의 영이 내리면 혼돈에서 세상이 창조된다. 하느님은 이를 보시고 "좋다."라고 말씀하신다.. 물과 성령과 하늘에서 들러온 말씀, 이 세 요소가 예수님의 세례에서 동일하게 등장한다. 따라서 세례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의미하게 된다. 예수께서 물 밖으로 나와 성령을 받고 "내 아들"이라는 말씀을 들었듯, 그리스도인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세례 때 물에 잠김은 내려감, 무기력한 상태로 내려감을 의미한다. 새로운 창조, 새 인간은 늘 성공을 추구하고 사물을 지배하는 인간성이 아니라, 혼돈의 심연 속에서 하느님께서 손을 잡아주시도록 내어 맡기는 인간성이다. 세례 받은 사람을 만나는 자리는 인간성이 파괴되고 상처 입고 곤경에 처한 장소다.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은 외부 내부의 혼돈을 대면하며 예수님과 함께 심연에 서 있는 사람이다. 인간의 혼돈과 삼연에 하느님 사랑의 심연을 더하여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새로운 모습으로 창조되는 사람이다.
세례는 특별한 지위를 의미하지 않고, 타인과 하나가 되는 새로운 차원의 연대를 뜻한다. 세례 받은 이들의 모임은 잘나가고 선택받고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단체가 아니다. 오히려 빈곤과 타락과 혼란으로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기꺼이 끌어안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인간 혼돈의 심연 속에 서기 위해 우리의 방어수단을 내려놓고 예수님과 연대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위험한 세상에서 하느님과 함께 서 있는 이들이다.
세례 받은 이들의 기도는 마음의 평안을 이루는 일과는 무관하다. 결과만을 바라는 행동도 아니고, 자기만족의 행위도 아니다. 예수님 곁에,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앞에 서는 행위다. 이는 위험할 수도 있다. 내면의 깊은 광야와 고독과 불확실성을 마주한다. 또한 아파하는 다른 이들과 함께함으로써 서로에게 결속되며 우리의 삶은 서로 얽히게 된다(상호 내재: co - inherence). 이로써 어둠과 아픔까지 공유하여 잊혀졌거나 억눌려있던 인간 정체성을 되찾게 한다. - 로완 윌리엄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