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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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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일 가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0-08-24 09:43   조회: 6,507회

본문

연중 제21주일 가해

하늘 나라의 열쇠


삶은 맺고 푸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약속을 맺기도 하고 풀기도 하고, 한이 맺혀 죽어가다가 그 한을 풀면 살아나기도 한다. 맺고 푸는 일이 잘못되면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인다. 약속이나 인연을 잘못 맺으면 괴로워진다. 풀리지 않는 문제는 우리를 괴롭힌다. 가족이든 친구든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 집안이든 나라든 풀리지 않는 경제문제, 혹은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신앙이나 인생관에서도 풀리지 않는 숙제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잘 맺고 잘 푸는 길이 없을까? 성경에서는 맺고 푸는 도구로 “열쇠”를 제시한다. 열쇠의 기능이 잠그기도 하고, 열기도 하기에 맺고 푸는 상징이 된다.

첫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맺고 푸는 권한의 상징인 열쇠에 관한 말씀을 전한다. “다윗 집안의 열쇠”로 표현하는 이 권한은 왕 아래의 “시종장”(국가의 최고위 직책으로, 창세기에서 요셉이 이집트에서 오른 직책)에게 주어졌었다. 그런데 자신만을 생각하며 세도를 부리던 시종장 세브나를 이 직책에서 파면하고, “하느님의 종” 엘야킴을 그 후임으로 세우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나는 다윗 집안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메어 주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라.”라고 선언하신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일으켜 세우신다”는 의미의 이름을 지닌 엘야킴 역시 기대했던 만큼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자신은 직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집안사람들이 호가호위하며 족벌주의를 조장한 결과 파멸하고 만다.

삶의 문제를 바르게 매고 공정하게 풀 열쇠는 무엇일까? 인간 본성의 유한함을 넘어서서 지켜지는 정의, 가족이라는 한계나 학연 지연으로 비뚤어지지 않는 공평함은 어디서 올까?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다윗 집안의 열쇠”가 아니라 “하늘 나라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신다.

베드로가 받은 매고 푸는 권한인 “열쇠”는 성경에서, 유다인들은 “금지하고 허락하는 권한”, 즉 공동체에서 내쫓거나 받아들이는 권한으로 해석하였고, 초대 교회에서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으로 해석하였다. 이 열쇠는 신약성경에서는 바로 예수님 자신으로써, 세상에서 열면 아무도 닫을 수 없고, 닫으면 아무도 열 수 없는 온전한 권한을 의미한다(묵시 3, 7 참조). 이 열쇠는 죽음과 지옥을 관장하는 영생의 열쇠였다(묵시 1, 18 참조). 복음에서 바로 열쇠이신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이 열쇠, 즉 맺고 푸는 권한을 맡기신다. 곧 교회에 그리스도가 위탁된다.

어떻게 이 권한이 주어졌던가?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시고 열쇠를 맡기신다.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나의 입장을 물으신다. 즉 남들이 하는 이야기나 책에서 읽은 예수님, 혹은 교리 시간에 배운 예수님 말고, 내가 살아가는 가운데 직접 체험한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요구하신다. 나 자신의 고백이 참 신앙이라는 의미다.

예수님의 질문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 여기서"살아 계신 하느님 theos zon"이라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 살아계시다는 표현은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생명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이시라는 의미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로, 우리 가운데 살아계시는 분임을 베드로는 고백한다. 소문 속의 예수님, 말로만 어렴풋이 믿는 예수님은 살이 계신 하느님이 되지 못한다. 살아 계신 하느님은 살아있는 삶에서 만나게 된다. 남의 말이 아니라 나의 삶에서, 기쁨과 보람, 슬픔과 상처 등 삶의 애환 가운데 만나는 하느님께 대한 고백이 참된 신앙고백으로 삶의 열쇠를 받는 고백이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은 살아있는 신앙 고백을 할 때 베드로에게 주셨듯이 우리에게 열쇠를 주신다. 그 열쇠는 잠그기도 하고 풀기도 하는 열쇠다. 인생에서 잠가서 묶여야 할 것과 풀어야 할 것이 있다. 마음을 병들게 하는 거짓된 믿음, 마음을 옭아매는 허상, 내 자유를 빼앗아가는 악의 세력에서 풀려나야 한다. 살아있는 신앙의 고백이 그 열쇠다.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나갈 길 없는 고난에서 우리는 열쇠로 잠기듯 주님과 하나로 묶여지길 원한다. 극복할 수 없는 인간 한계와 본성에서 풀려나와 영원하신 분과 하나로 묶이고 싶다. 살아있는 삶으로 고백하는 신앙은 나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도록 묶어준다(A. 그륀). 그저 겉도는 신앙으로 부자유의 사슬과 두려움에서 풀려나와, 살아 있는 하느님의 아들, 진정으로 내 삶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찬미하는 신앙, 그리스도와 나를 참으로 묶어주는 신앙으로 주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

이 놀라운 신앙의 신비를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찬미한다.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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