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원가입  |   로그인  |   오시는 길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말씀의 숲
영성의 향기 말씀의 향기 수도원 풍경 세상.교회의 풍경 기도자리
말씀의 향기

연중 제27주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0-10-04 11:05   조회: 6,226회

본문

연중 제27주일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


오늘 제1독서와 복음은 포도밭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독서인 이사야서에서 하느님을 배신하고 공정과 정의를 저버린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포도밭 이야기고,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는 포도밭과 이를 빼앗기는 소작인의 비유를 전하신다. 포도밭 이야기는 구원의 역사를 요약한다. 즉 임대 받은 포도밭이 탐 나서 주인의 외아들을 살해하는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지도층은 포도밭을 빼앗기고, 주인의 외아들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인 새로운 백성에게 포도밭이 주어진다는 말씀이다. 비유라는 문학 양식은 시대를 뛰어넘는 역동성과 현실성을 지니기에 예수님은 자주 비유로 말씀하신다(J. Jeremias). 복음에서 탐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이들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 누구이고,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새로운 백성은 누구일까?

어떤 사회학자들은 최근의 우리 사회를 "분노 사회"라고 진단한다. 현대인은 아침부터 밤까지 마음속에 분노를 안고 살아간다. "저 사람은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운전을 저런 식으로 하면 정말 화가 나, 음식 맛이 왜 이렇지? 나라 돌아가는 꼴이 왜 이 모양이지?" 등등 끊임없이 화를 내는 현실에 대한 진단이다. 화를 내고 나면 불쾌하고 피곤한데 왜 분노하며 살까?

복음의 비유 말씀을 다시 보자.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소작인들에게 맡겼다." 추수철이 되자 소작료를 요구했지만, 소작인들은 주인이 보낸 사람들을 매질하고 죽였다. 땅 주인이 마지막으로 외아들을 보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죽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누구 것인지 돌아보게 하는 비유 말씀이다. 인생이라는 포도밭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착각, 혹은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탐욕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노의 뿌리가 아닐까?

포도밭이 누구 것이었던가? 소작인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다. 삶은 누구의 것인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임대하신 것이다. 이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여 내 것인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그대로 되지 않으니 화가 난다. 살면서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가? 자식 때문에 분노가 생기는가?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화가 난다. 남편이나 아내에게 화가 나는가? 남편이나 아내가 자기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기대에 어긋나면 분노한다. 직장, 혹은 친구 때문에 화가 나는가? 자신의 계획이나 의견이 있는데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화가 치민다. 마음대로 되지 않을수록 점점 분노하다가 화병을 앓는다. 화병은 자신과 이웃을 죽인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어떻게 해서든 내 것으로 만들려고 주인 아들을 죽이는 소작인처럼, 분노로 가득 차서 씩씩거리며 어떻게 해서든 목표를 쟁취하려는 상황이 분노 사회 아닐까?

임대 받은 땅을 자기 것으로 차지하려고 주인의 외아들을 죽인 이들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선언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삶이 임대 받은 포도밭임을 망각하고, 자신이 주인 행세를 하려는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없어진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망상에 빠져 분노하는 삶의 끝은 하느님 나라인 기쁨과 평화의 상실이다. 불안과 원망 속에 분노하다가 자신과 이웃을 잃어버린다.

이와 반대로 인생을 임대 받은 포도밭으로 여기며 기꺼이 소작료를 바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인생은 주인이 믿고 맡겨놓은 시간이고, 소작인으로서는 감사하며 충실히 가꾸어갈 선물로 받아들이는 삶이다. 살림살이가 잘되면 고맙고, 부족하면 아쉬운 대로 감사드리고, 자신이나 남편이나 아내가 사랑스러우면 고맙고 못마땅할 때면 그래도 있음만으로 감사드리는 삶, 그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되돌려 드릴 소작료 아닐까? 그렇게 소작료를 드리는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기쁨과 평화가 주어진다.

어제 연합뉴스에 전북 정읍시청 노동직 김대식씨 이야기가 실렸다. 이분은 10년째 발 마사지 봉사를 하신다. 근무하는 날은 한 곳, 출근하지 않는 날은 두 곳의 경로당이나 요양원을 돌며 하루 평균 10여 명의 발 마사지 봉사를 하신다. 그는 "발이 더럽다고 생각했다면 마사지를 못 했을 것"이라며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마사지였고, 그 재능으로 남들을 웃게 할 수 있어서 좋다"라며 미소 지었다. 오로지 손힘만으로 하는 봉사활동이기에 고단할 법도 하지만 김 씨는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어 그저 기쁘다. 이 기쁨은 봉사를 할 수 있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대식씨가 시간이나 재능을 내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더 크고 더 많이 내 것을 찾으려 하였다면 나눔의 기쁨이나 환한 미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남의 발을 만지는 작은 재능이지만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봉사로 나누었을 때 하느님 나라의 특징인 환한 미소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기쁨이 주어진다. 하느님께 받은 것을 되돌려 드리는 모습이다.

내 것을 찾고, 더 크게, 더 많이 만들려는 욕망은 인간 존재의 마음 깊이 뿌리내린 공통적 환상으로, 집단적 악몽이다. 이 탐욕에 눈이 멀면 결국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기에 "기능장애", 혹은 정신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E. 툴레). 이 장애의 극복은 자신의 본 모습을 자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어떤 대상이든 화가 올라오는 순간, 그 대상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소작인의 심보가 내 안에서 작동을 하고 있음을 자각하면, 정신이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화가 나면 진지하게 물어보자: 나를 분노하게 하는 그것이 영원히 나의 것일까? 없어질 것에 분노하는 내가 진짜 하느님께서 만드신 나일까? 내 삶은 누구의 것인가?

재산이든 가족이든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임대하신 포도밭으로, 언젠가 되돌려 드릴 선물로 여긴다면 마음에 들지 않아 분노하고 괴로워할 이유가 없어지지 않을까? 부족하든 넉넉하든, 크든 작든 모두 감사하며 서로 나누고, 그때 하느님께서 임대하신 삶의 포도밭은 풍성한 기쁨과 행복의 결실을 겨져다 줄 것이다.

이를 체험한 바오로 사도는 간곡하게 우리를 초대한다(제2독서): "형제 여러분,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해뜨는 마을 l 영보자애원 l 영보 정신요양원 l 천안노인종합복지관
교황청 l 바티칸 뉴스 lCBCK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l 한국 천주교 주소록 l 수원교구
우. 13827 경기 과천시 문원청계길 56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56 MunwonCheonggyegill Gwachon-si Gyeonggi-do TEL : 02-502-3166   FAX : 02-502-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