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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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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0-09-10 09:38   조회: 6,348회

본문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정체성과 고유성이 드러나는 원수 사랑의 가르침이다.

말씀은 아름답지만 그 실천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이도 없을 것이다.

인간 조건과 한계를 받아들이신 분께서 왜 사람들이 실천하지 못할 듯 보이는 말씀을 하셨을까?

나의 원수란 '나'를 무시하고,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내' 가족을 파멸시키는 사람이다.

원수의 기준에는 이처럼 언제나 "나"와의 관계가 들어 있다.

그 '나'가 존재의 중심에 있는 한 원수는 복수의 대상일 뿐, 사랑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내 물건, 내 자존심, 내 경험, 내 가족이 '나'일까?

'나'라는 실체에는 "왜소한 나(ego)"와 "큰 나(the Self)"의 두 차원이 있다. (이하 D. 호킨스)

'에고(ego)'라고 부르는 "왜소한 나"는 수치심, 죄책감, 공포, 욕망, 분노, 경멸, 자만심 등을 겪는 표면적인 '나'다.

'본래의 나'는 하느님 모상인 "큰 나(the Self)"로서 신뢰와 용기와 자비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본래의 '나'다.

원수 갚으려는 '나'는 왜소한 나이고, 원수를 사랑하는 '나'는 왜소함에서 해방되어 위대한 본래 모습을 찾은 '나'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왜소한 나에서 본래의 나로 변화되라고 초대하시는 말씀으로 들린다.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내 것만 보며 내 눈길을 '왜소한 나'에게 잘못한 원수에게만 둔다면 원수 사랑은 불가능하다.

내 눈길을 아버지께, 그 자비 가득하신 눈길에 마주할 때,

그래서 '진정한 나'는 내 물건도, 내 자존심도, 내 가족도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 때,

거기에는 원수나 미워하는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다만 자비가 필요한 피조물이 있을 뿐이다.

눈에 보이는 '작은 나'를 넘어서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본래 나'를 만날 때 원수 사랑의 길이 열린다.

"사랑은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의 법칙" (D. 호킨스)임이 그때 드러날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돌아본다.

수난의 여정에서 뺨을 맞고, 옷을 내어주고, 십자가상에서 원수를 위해 기도하시고 ...

그 모든 삶과 죽음은 다만 아버지만 보고 가셨기에 가능한 길 아니었을까?

당신의 것은 이미 없어지고 모두 아버지의 것이기에 아버지를 찬미하며 가신 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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