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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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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가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0-09-06 11:38   조회: 6,918회

본문

연중 제23주일 가해 -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어느 공동체든지 구성원들 마음이 모아져 화목하기도 하지만, 서로 뜻이 맞지 않아 긴장과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로마에서 공부하던 때 겪은 일이다. 기숙사에는 40여 개국에서 모인 120명의 사제들이 살고 있었다. 사제들이 모인 곳이니 화목할 듯하지만, 사람 모인 곳은 어디나 비슷하여 속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미워하고 화내며 들볶이다가 고해성사를 보며, "동료 시제들에게 화가 많이 납니다. 공동생활이 힘듭니다."하고 말씀드렸다. 여든을 넘으신 수사 신부님이 한숨을 크게 쉬시더니 천천히 하시는 말씀: "내가 수도 생활 한 지 50년째네. 그런데 공동생활은 나도 아직 힘들어."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이들의 모임인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공동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라고 예수께서 이르신다. 얼핏, 공동체 내에서 죄지은 사람에 대한 단계적 처리 방침을 이르신 말씀으로 들린다. 그런데 말씀의 참뜻은 앞뒤 문맥을 함께 살펴볼 때 잘 드러난다.

이 말씀을 하시기에 앞서 예수님은 작은 이를 업신여기지 말라며, 하늘나라는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들의 것이라고 이르신다. 이어서 되찾은 양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오늘의 복음 내용을 선포하셨다. 이러한 문맥을 고려할 때 말씀의 참뜻은 단순히 공동체의 죄인 처리 방침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작은 이들, 길 잃은 이들, 말썽을 일으키는 죄인들, 변두리 인생들,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찾아 돌보고 품어주라는 데 있다. 즉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비유를 교회 공동체의 구체적 현실에 적용한 말씀으로 볼 수 있다(Lectio Divina vol.13, 184-185).

그러기에 먼저 잘못한 형제를 "단 둘이 만나 타이르라"라고, 즉 대화를 하라고 이르신다. 상대의 입장을 들어보지도 않고 헐뜯고 자신이 도덕군자처럼 단죄하면 공동체에 분란만 커진다. 이러한 노력이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두 사람 더 데려가라"라고 이르신다.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교회에 알려라"라는 말씀은, 사회에서 하듯 소문과 여론으로 형제를 대하지 말고 교회, 즉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의 신앙으로 해결하라는 의미다. 끝으로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라는 말씀은 단죄와 파문을 연상시키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 시대 유다인들에게 이교도나 세리는 파문과 축출의 대상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즉 모든 노력을 한 후에도 형제의 변화가 없으면 험담으로 망신 주고 내쫓지 말고, 거리를 둔 채 함께 살라는 말씀이다.

이어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하고 이르신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을 위해 맺든 풀든 모든 과정은 기도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기도를 당부하시며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을 마무리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 죄인이나 약자를 차별하고 무시하고 험담하고 귀찮아 외면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귀로 아픈 사연을 들어주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품어주고, 예수님의 능력을 청하며 끝까지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당부하신다.

작금의 사회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편을 갈라 극단적인 험담과 비난 단죄와 원망을 쏟아붓는다. 그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신앙인들 역시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교회 공동체에도 잘못하고 부족하고 허약한 이들에 대하여, 위로와 대화와 포용보다는 험담과 비난과 원망과 단죄가 난무하기도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사랑법 외에 다른 법은 없다. 그러기에 실제 여러 초대 교회의 공동체를 설립하고 그 안에서 숱한 갈등과 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기도 하고 때로 사람들의 고집에 분노하고 때로 화해를 호소하며 공동체의 문제를 몸으로 겪은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요약한다(제2독서).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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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인적이 드문 새벽에 산책길을 청소하고 있었다. 청소부도 아니고 등산객도 아닌 노인의 선행이 궁금하여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과거에 절도범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생각해도 흥분되어, 오랫동안 그런 짓을 했습니다. 매번 흥분이 된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절도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쁜 일도 밥을 먹듯이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일삼었습니다. 그러던 중, 체포되어 분당 수정구에 있는 경찰서에 한 경찰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경찰관이 취조 중에 저에게 물었습니다. ‘식사는 하셨습니끼?’ 저는 이 질문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찰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이 분의 마음속에 숨겨진 ‘착함’을 건드린 것이다. 그는 절도행각을 멈추고 8년 전부터 하루에 서너 시간씩 자발적으로 길거리 청소를 시작하였다. 자신의 과거에 잘못된 삶에 대한 참회이자. 앞으로 자신의 삶의 기획하기 위한 경계에서 자신의 품격을 만들고 있었다. (https://blog.naver.com/eduba/22207644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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