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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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화요일
-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예리코는 여호수아 시대에 창녀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도와주고 구원을 받은 곳이었다.
당시 사람들 눈에는 구원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방인 창녀 라합을 하느님께서는 구원하셨다.
자캐오 역시 윤리적 문제투성이의 세리로서 손가락질 받는 인생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모든 만남이 구원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예수님을 온전히 마주하려는 갈망을 담은 만남, "온 존재를 기울인 만남"(M. Buber)이 새로움을 준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만남의 과정에는 언제나 장애가 따른다.
자캐오의 작은 키는 신체적 장애뿐 아니라, 누구나 지닌 인간 한계를 상징하는 의미로 들린다.
한계를 지니지 않은 인간은 없다.
그 한계는 주저앉게 하는 걸림돌이 아니라 뛰어넘는 사다리로 쓸 수도 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주님을 만나려는 열정으로 나무에 오르는 자캐오처럼.
"예수님께서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한계를 넘어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에 오른 자캐오를 예수님이 먼저 보신다.
나무에서 내려오라는 말씀에서 키가 작은 본래 모습을 그대로 귀하게 받아주시는 주님의 마음이 보인다.
게다가 그분께서 오늘 내(자캐오) 집에 머무르시겠단다.
내 존재를 받아주신 분께서 내 안에 머무르시겠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내 삶이 제 모습을 찾고 내 안에 주님께서 현존하시는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키 작고 죄 많은 인생의 보상으로 집착했던 재물을 단박에 내버리는 해방 선언이다.
속죄와 감사로 집착과 과거를 털어버리고 가볍고 맑은 몸으로 자유를 누리겠다는 고백이다.
그때 그분께서는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서 벌어진 이 일화는
그분께서 세상에 오신 까닭을 암시한다.
말씀은 예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지를 근본적으로 되묻도록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