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원가입  |   로그인  |   오시는 길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말씀의 숲
영성의 향기 말씀의 향기 수도원 풍경 세상.교회의 풍경 기도자리
말씀의 향기

연중 제32주일 가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0-11-08 10:07   조회: 6,409회

본문

연중 제32주일 가해


 -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

 ​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공자 말씀처럼, 모든 사람은 삶의 원리로 참다운 인생길을 가르쳐주는 도, 혹은 지혜를 깨닫길 바란다. 오늘 들은 성경 말씀은 신앙인에게 지혜가 무엇이고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일러준다.

 제1독서는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라고 전한다. 특별한 사람에게만 지혜가 드러나지 않고, 지혜롭기를 갈망하는 이들 누구에게나 드러난다는 말씀이다. 어린이나 노인이 박사나 교수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다. 구체적으로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라고 지혜서는 전한다. 인생에서 겪는 사건의 외면만 보지 말고, 사건 속에 담긴 뜻을 헤아리려는 갈망을 가지고 편견을 떠나 숙고하면 지혜를 얻는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복음에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인지 들려주신다. 비유는 이렇게 시작된다.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남녀 간의 하나 됨을 축하하는 혼인 잔치란 유다인들에게 가장 큰 잔치로써, 성서에서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 되는 하늘나라를 상징한다. 고대 근동 지방의 결혼식에서는 저녁에 신랑이 신부 집에 와서 잔치를 하고, 이튿날 신부를 데리고 가는 풍습이 있었다. 잔치를 준비한 신부 집은 초대한 사람들이 다 들어오고 문이 닫히면, 유목민들의 관습대로 주인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으며, 만일 들어간다면 침입자로 취급했다. 복음에 등장하는 열 처녀란 신부가 아니라, 화동(들러리)들로, 화려한 옷을 입고 잔치에 참여하는 화동들은 혼인의 꽃이다. 그런데 저녁에 잔치가 시작되기에 어린 화동들은 잠이 들곤 하였다.

이 상황에서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자기 생각에 빠져 신랑을 잊어버렸기 때문 아닐까? 화동으로 뽑힌 것이 자랑스러워 예쁘게 치장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잔치를 기다렸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자기 생각에 ‘신랑이 늦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예상하고, 자기 생각에 ‘신랑이 혹 늦게 오더라도 다른 처녀들의 것을 빌려 쓰면 된다’며, ‘정 안되면 잠깐 나가서 사 오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음의 중심에 신랑이 아닌 자기가 있었다. 자기 생각, 자기 판단으로 가득 차서 자기중심대로 사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처녀들이다. 이들 마음속에 신랑은 없었다.

이와 반대로 슬기로운 처녀들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신랑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찬 사람들 아닐까? 신랑이 늦게 올 수 있고, 그러면 어두울 테니 등잔을 준비하고, 등잔불을 켜기 위해 기름을 준비했다. 이 모든 준비는 마음 중심이 자기가 아니라 신랑에게 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음의 중심에 신랑이 있는 사람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이었다. 이들이 신랑을 맞아 잔치에 참여한다. 자신의 생각만 하는 자기중심주의가 미련함이고, 신랑을 먼저 생각하여 신랑에 맞춰 준비하는 태도가 지혜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우리 모두 복음에 등장하는 열 처녀들처럼 예수님과의 만남을 위해 이렇게 성당에 모였다. 다들 등잔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등잔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기름이 없다면 기다림이 헛수고가 된다. 등잔과 기름은 무엇을 뜻할까? 교부들은 등잔은 신앙으로, 등잔을 밝힐 기름은 신앙의 실천, 혹은 사랑으로 풀이하였다. 어리석은 처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신앙인이요, 슬기로운 처녀는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해석했다.

같은 맥락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기름을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나오는 신념"으로 해석했다. "행동이 나오는 신념"은 마음의 중심에 달렸다.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면 그분께서 원하시는 바를 실천하고, 마음의 중심에 내가 있으면 내 입맛에 맞는 대로 행동한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등불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기름인 사랑의 실천으로만 밝힐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기름으로는 등불이 켜지지 않는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왜 기름을 나누어 달라는 미련한 처녀들의 요청을 거절했을까? 사랑의 실천인 나눔을 거절하는 태도 아닐까? 나눔은 사랑이지만, 나눔을 이루는 사랑의 샘은 남의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 스스로 책임져야 함을 암시한다.

등잔, 곧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만 중요하지 않고, 등잔을 밝힐 기름, 곧 삶의 중심을 주님께 둔 신앙의 실천이 중요하다. 잔치에는 참여하고 싶어 하면서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들, 신앙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실천 없이 자신이 원하는 좋은 결과만을 기대하는 이들, 성당에는 나오지만 예수님 말씀보다 자기 편한 것에 매달린 이들이 신랑은 잊어버리고 제 상상에 몰두한 어리석은 화동들이 아닐까? 그들에게 잔칫집 문은 열리지 않는다.

우리 마음 중심에 주님이 계시다면, 그러므로 자신의 편의보다는 주님이 더 중요하기에 그분의 뜻을 우선한다면, 믿음의 등잔을 사랑 실천의 기름으로 채우는 지혜를 얻고, 깨어서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비유의 끝에 예수님은 이렇게 이르신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해뜨는 마을 l 영보자애원 l 영보 정신요양원 l 천안노인종합복지관
교황청 l 바티칸 뉴스 lCBCK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l 한국 천주교 주소록 l 수원교구
우. 13827 경기 과천시 문원청계길 56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56 MunwonCheonggyegill Gwachon-si Gyeonggi-do TEL : 02-502-3166   FAX : 02-502-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