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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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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0-10-19 09:55   조회: 6,376회

본문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오늘은 전교주일로서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한다. 예수님께서 복음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고 하셨듯 전교는 모든 교우들의 의무다. 그런데 전교는 무엇일까? 천주교회를 선전하고 입교시켜 신자 수를 늘리는 것일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교의 신학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교회는 본성상 선교를 사명으로 하는 바, 이는 교회가 성부의 계획에 따라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서 그 기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계획은 원천적 사랑에서, 즉 성부의 사랑에서 흘러나왔다"(선교교령 2항).

전교, 사명, 파견, 미사 (mittere- missio- missa)는 같은 어원을 지닌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파견(missio)을 받으셨던 분으로서 파견하신 아버지를 드러내셨다. 교회란 예수님으로부터 파견 받은 이들이 예수님의 사명(파견 missio)을 계속하며 예수님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신앙인은 이 파견의 되풀이로써 예수님과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라는 파견(사명 missio)을 받은 이다. 이 과정은 원천적 사랑(Amor Fontalis), 샘솟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온다. 즉 선교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이 가만있지 못하고 샘물처럼 흘러넘쳐 아들과 성령을 파견하셨듯, 사랑의 샘이 우리 가슴에서 흘러넘쳐 이루어지는 사랑의 드러남이다. 선교는 재주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다. 의무감에서 억지로 수행할 명령이 아니라 사랑의 샘에서 자발적으로 솟아나는 하느님의 드러남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러기에 선교에 앞서 내 안에 샘솟는 하느님의 사랑을 먼저 체험할 필요가 있다. 이를 두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에서 "기쁨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만, 한줄기 빛으로라도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는 끝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개인적인 확신에서 생겨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사랑의 기쁨을 체험하고 이를 전하는 것이 선교라고 가르치신다. "진정한 해방을 맛본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들의 요구에 더욱 민감해집니다.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선익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바오로 성인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 14).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 16)."

"울지 마 톤즈"로 유명한 이태석 신부는 자신의 선교활동의 뿌리를 이렇게 고백한다.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마주하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하느님께서 주신 구체적인 선물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하느님의 사랑을 먼저 체험하였기에 그는 톤즈 인근의 80여 개 마을을 찾아가 순회 진료를 하였고, 손수 벽돌을 찍어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가르쳤다. 2010년 1월 14일 이태석 신부가 48세의 나이로 선종했을 때, 눈물 흘리는 것을 나약함의 상징으로 여겨서 아파도 울지 않고, 배가 고파도 울지 않는다는 톤즈 사람들(딩카족)은 하나같이 흐느껴 울었다. 왜 우냐고 묻자 한 한센인 환자는 "그는 우리에게 하느님과 같은 분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과연 그들은 이태석 신부에게서 하느님을 보았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원천적 사랑에서 샘솟는 선교의 본 모습이었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이를 선포하는 선교는 다른 이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생명은 내어 줌으로써 더 자라고, 고립되고 안주하면 약해집니다. 참으로 삶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안위는 제쳐두고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전해주려는 열정에 불타오릅니다. ...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내어주는 그만큼 생명을 얻고 또 자랍니다. 선교도 분명 그러합니다." (아파레시다문헌 360, 복음의 기쁨 10항에서 재인용) 그러기에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하고 감탄한다.

124위 복자 중 한 분이신 백정 출신 황일광(1756-1802) 순교자는 복음을 받아들인 삶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증언한다: "나는 백정으로 태어나 이제껏 사람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천주교인이 됨으로써 어떤 학문이나 이치가 아닌 신앙의 삶을 통해 천주교가 참됨을 깨우치게 되었다. 나에게는 천국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아직 오르지 못한, 곧 가게 될 이승 너머의 곳이고 또 하나는 지금 이 생활이다. 양반인 천주교 형제들은 금수와 같이 취급되는 나를 형제라 부르며 나를 친형제처럼 사랑으로 대해 주었다. 우린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 어머니께 한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드렸고 함께 고생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길거리에서 "예수 믿으시오.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하는 외침보다 더 훌륭한 전교는 삶을 통한 증거다. 우리 생활이 사랑과 감사에 넘쳐 신자다울 때 이미 전교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전염병 상황에서 전교주일을 맞아 교황님은 이렇게 이르신다. “우리는 정말로 겁에 질렸고, 혼란에 빠졌으며, 두려웠습니다. 고통과 죽음은 우리의 인간적 나약함을 경험하게 했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악으로부터의 해방과 생명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떠올려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선교에 대한 부르심,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에서 벗어나라는 초대는 나눔, 봉사, 중재기도의 기회로 제시됩니다. 하느님이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선교 사명은 닫혀 있고 두려워하는 나 자신에서 자신이 받은 선물을 깨닫고 쇄신된 나 자신으로 이끌어줍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다. 어려울수록 더욱 복음을 증거하라고 이렇게 호소하신다. "이 코로나19 대유행의 시기에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 깨닫는 일은 교회의 사명을 위해서도 하나의 도전입니다. 질병, 고통, 두려움, 고립은 우리에게 도전입니다. 홀로 죽어가는 사람, 버림받은 사람, 일자리와 수입을 잃어버린 사람, 노숙자와 식량이 부족한 사람의 가난은 우리에게 도전입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내가 일하는 곳에서 하느님의 삶을 드러냄으로 전교는 이루어진다. 하느님의 삶은 바로 '자비'와 '사랑'이다. 자비와 사랑을 살면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셨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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