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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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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일 나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01-24 19:52   조회: 6,316회

본문

연중 제3주일 나해 -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지난주 우리는 부르심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던지신 "무엇을 찾느냐?"라는 질문을 마주하여 자신의 소명을 깨닫게 되고, 사무엘의 소명담을 통해 하느님의 부르심을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해도 점진적으로 깨우침을 묵상하였다. 이번 주 성경 말씀은 주님의 부르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따를 것인가를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오늘 말씀에서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즉시 실행에 옮기는 공통적 특징을 전해준다. 제1독서에서 요나가 가로지는 데만 3일이 걸리는 큰 도시 니네베에서 파멸을 경고하자, 니네베 사람들은 즉시 받아들여 하루 만에 악한 길에서 돌아선다. 복음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은 제자들은 "곧바로" 주님을 따른다. 부르심이 결실을 맺으려면 즉시 응답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말씀이다. 부르심에 즉시 응답하지 않는다면 부르심은 내 삶에 결실을 맺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고 만다.

E. 쿼블러로스는 의사로서 평생 임종자들을 보살피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탐구하였다. 그 결론으로 행복한 삶의 핵심은 중요한 것을 지금 여기서 곧바로 행하는 태도라고 이렇게 일러준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한 번만 더 별을 보고 싶다고, 바다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참으로 행복하게 살려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지금 그들을 보러 가라.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참으로 행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신앙인에게 세상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길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주님을 만나서 그 품에 안기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요나의 설교를 들은 니네베 사람들처럼 지금 바로 악한 행실을 버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처럼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서야 후회하지 않는다.

말씀을 듣고 즉시 따를 수 있는 근본적 원동력은 무엇일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더 좋은 것을 선택한다. 엄마가 외출하며 아이를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부탁하였다. 그 아주머니와 사이좋게 놀던 아이는 엄마가 돌아오면 아주머니를 쳐다보지도 않고 엄마에게 안긴다. 이웃집 아주머니보다 엄마가 더 좋기 때문이다. 500원짜리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던 어린이는 5만 원짜리 새 장난감을 선물 받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500원짜리는 거들떠보지 않고 새것을 가지고 논다. 새 장난감이 더 좋기 때문이다. 주님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 제자들은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 고기 잡는 일보다 부르시는 주님이 더 좋았기에 즉시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을 것이다.

첫 독서의 니네베 사람들 회개 이야기나 복음의 예수님 제자들의 소명담은 또한 공통적으로 부르심에 응답하는 길이 변화에 있음을 전해준다. 악행을 일삼던 니네베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이전의 행실을 버린다. 변화된 모습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부르시자 부모와 가족으로 상징되는 과거를 떠나고, 고깃배와 그물로 상징된 미래 생업 보장 수단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무도 크고 중요한 것이기에 과거든 미래든 이전의 가치에 매이지 말고 새로운 결심으로 따라야 할 길임을 제시한다.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변화된 모습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그린다: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 말씀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가치를 재평가하라는 권고로 들린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 절대적 가치지만, 부부나 가족 등 인간관계나 희로애락 등 감정이나 재물 등의 모든 것은 사라지는 상대적 가치다. 그러니 하느님을 절대적 가치로 모시고, 다른 모든 가치는 상대적으로 대하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주님이 너무도 좋아서 삶의 첫 자리에 주님을 모시는 사람은 주님의 뜻이 아닌 다른 무엇을 먼저 찾지 않는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옳지 못한 일의 유혹을 받는다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정직함이 더 중요하기에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살라는 말씀이다. 세상 일이 슬퍼 눈물이 난다면, 주님을 보고 눈물을 거두라는 말씀이다. 하느님과는 상관없이 인간들이 보내는 칭찬에 집착하여 기쁘다면, 그런 기쁨은 포기하라는 말씀이다. 내가 지닌 귀중한 물건이 주님의 선물임을 잊어버리고 자만심에 우쭐대는 동기가 된다면, 그 물건은 내버리라는 말씀이다. 사라져 없어지고 말 것들에게 목숨을 거느라고 영원한 것을 잃으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지금 겪는 가난이나 질병, 노환이나 고뇌는 사라져 갈 것들이다. 그러니 제자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물과 아버지와 고깃배를 버렸듯 모든 근심 걱정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 아닐까? 모두다 없어지지만 우리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없어지지 않는다. 사랑만이 영원으로 우리를 이어주기에 지금 곧바로 따라야 할 부르심 아닐까?

실제 생활에서 얼마나 자주 상대적인 일이나 엉뚱한 일에 기뻐하고, 지나가고 말 엉뚱한 일에 주눅 들고 괴로워하는가? 얼마나 많이 주님의 사랑을 잊은 채 남들의 시선에 더 신경 쓰고, 주님의 사랑보다 인간의 평가나 체면 때문에 하느님께서 귀하게 만드신 나를 잊고 사는가? 얼마나 자주 지금 누리라는 기쁨의 초대를 미루어 두었다가 그 시간을 놓치고 나중에 후회하는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 말씀이다. 지금, 때가 찾다. 지금 즉시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맛 들이고, 지금 즉시 엉뚱한 집착의 그물을 버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기쁜 소식을 듣고 하느님 나라의 행복으로 돌아오라고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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