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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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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0-12-26 11:40   조회: 6,443회

본문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지난 밤 우리는 구원자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아기 예수를 경배하였다. 오늘 낮 미사 복음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경위가 아니라 강생의 의미를 신비적으로 묘사하는 요한복음의 로고스 찬가를 들려준다. 찬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세상은 하느님의 말씀(영원불변의 로고스)으로 창조되었기에 창조된 만물은 말씀과 관련이 있다. 산, 바다, 동물, 식물, 바람, 햇빛 등 세상의 모든 피조물 속에 말씀이 담겨있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 자신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 우리가 겪는 희로애락, 생로병사의 모든 과정에 하느님의 말씀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말씀이 피조물 안에 그저 흔적처럼 머무르지 않고, 오늘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셨다. 우리 앞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이시다. 세상을 창조하시던 말씀이 인간이 되셨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여기서 "생명"은 단순히 숨이 붙어 있는 생물학적 상태(vio)나, 기쁨 없이 피상적으로 사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명"(zoe)은 하느님 안에서 살아있고 생기 넘치는 상태, 영원한 하느님을 모신 상태를 말한다. 이 생명은 빛이다. 빛은 세상을 밝히고 사람이 갈 길을 일러준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둠, 극복할 길 없는 무의미는 참된 말씀인 예수님을 통해서 밝혀진다는 선언이다. 이 생명과 빛이 세상에 오신 신비가 예수님의 성탄이다. 그러나 모든 이가 이 빛을 받아들이고 생명을 누리지는 못한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왜 세상은 영원한 생명과 어둠을 비추는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맞아들이지 못했을까? 그분의 모습이 사람들의 기대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하느님께서 오신다면 강력하고 화려하고 풍요롭게 오시길 기대했는데, 노동자를 부모로 해서 초라한 말구유에 힘없는 핏덩이 아기로 태어나셨으니 알아보지 못했다. 여기서 그분을 알아보고 맞아들일 길이 보인다. 자신의 기대를 내려놓고 가난한 마음으로 겸손하고 단순하게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고 맞아들인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나게 된다. 오늘 아기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우리 가정에, 우리 공동체에 다시 태어나시려고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방 없어요"하고 외면하면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 밖에 계시겠지만, "제가 묵고 있는 방으로 오십시오."라고 말씀드리면 주님께서 우리 안에 태어나시고 우리도 하느님에게서 태어나는 새사람이 된다.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아기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할까? 서로가 서로를 예수님 대하듯 받아들이면 된다. 갑갑한 남편을, 한심해 보이는 아내를, 못마땅한 자식을, 늙어가며 잔소리만 하는 부모를,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못났다고, 바쁘다고 외면하면 "방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이든 남이든 마음에 들지 않고 부족하더라도 "누추하지만 그래도 들어오십시오" 하며 받아들일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다시 태어나시고, 우리는 하느님 안에 다시 태어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찬미가의 핵심이고 절정인 이 말씀으로 로고스 찬가는 마무리된다. 이 구절에서 “우리 가운데 사셨다.”를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이다. '천막'은 성경에서 심오한 주제들을 내포한 개념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의 증표인 십계명은 계약의 궤에 담아 천막에 안치했다. 즉 천막은 하느님 현존의 장소이자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만남의 천막에서 모세와 친구처럼 대화하셨듯,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이야기하시려고 천막을 치셨다는 뜻이다.

영원한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덧없는 세상에 오시어 나와 같은 사람이 되셨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시고, 육신을 취하심으로써 부족하고 한계 많은 인간 실존은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이 된다.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어 세상 피조물과 모든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뵙게 하신다. 이렇게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하느님의 영광 속에 우리의 생명이 빛나게 되었다. 그렇듯 성탄은 나를 위해 태어나신 하느님의 사랑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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