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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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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일 나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0-12-20 15:33   조회: 6,3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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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일 나해 - 하느님의 집

한 해가 저무는데 날씨는 춥고 세상살이는 고달프다. 하느님께서 우리 집에 계시면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모든 위험에서 지켜주실 것 같다. 성경 전반은 하느님의 집 이야기로 풀 수도 있다.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백성을 해방시키고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으신다. 그 증표로 십계명을 새긴 돌판을 주셨고, 이를 보관할 계약의 궤를 만들어 성막, 즉 천막에 모셨다. 이 천막 대신 하느님의 집인 성전을 지으려는 다윗 왕 이야기가 첫 독서의 내용이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라를 통일시킨 다윗 왕은 자신을 위해 향백나무 궁을 짓는다. 그런데 그제까지 그들을 지켜준 하느님 현존의 상징인 계약의 궤는 아직 천막에 있었다. 죄송한 마음에 다윗은 이를 모실 성전을 지으려 한다. 그러자 하느님은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라고 하시면서, 이제껏 다윗이 이룬 업적 모두가 당신께서 하신 일임을 일깨우신다. 그리고 다윗이 하느님께서 머무르실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다윗의 집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약속하신다: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 .....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직접적으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 관한 예고이지만, 구원의 역사 전체적 흐름에서 보면 하느님께서 세상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으나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였다. 후일 예수께서는 외부의 건물이 아니라 당신의 몸이 하느님이 계신 성전임을 암시하셨다(요한 2, 21 참고). 요한복음은 강생의 신비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라고 전하는데, 여기서 ‘사셨다’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본디 ‘천막에 살다’를 뜻한다. 상징적으로 성전에 계시던 하느님이 이제는 “말씀”을 통해 상징이 아닌 실체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고 사시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사도 바오로는 더 나아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예수님을 따르는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1코린 3,17)이 되었다고 선포한다.

복음에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고 사시게 될 사건이 천사를 통해 마리아에게 예고된다. 천사는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하고 마리아에게 알린다. 동정녀 마리아가 놀라서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질문하자, 천사는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라고 전한다. 성령의 힘이 천막을 치듯 마리아를 덮어 하느님께서 인간 안에 거처를 마련하시겠다는 예고다. 이제 하느님이 사람이 되심으로 사람이 하느님의 집인 성전이 된다는 놀라운 소식이다.

이에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대답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는 엄청난 일이 우주적 사건이나 정치 사회적 대변혁이 아니라, 시골 처녀의 순박한 받아들임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신비, 하느님께서 인간 사이에 당신의 성전을 마련하시는 신비의 핵심은 마리아가 보인 "받아들임"이었다.

진정한 받아들임은 받아들인 내용과 받아들인 사람이 하나가 되는 사건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그 역할은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이 된다. 결혼하여 아내가 되든, 자식을 낳아 아버지가 되든, 나와 내가 받아들인 일이 하나가 될 때 그 역할이 결실을 맺고 내 모습도 변화된다. 이를 두고 에크하르트 툴레는 "받아들임을 통해서 인간은 넓고 거대한 본래의 자신이 된다. 받아들이기 전에는 이기적 자신에 묶여 자기를 우주나 역사의 하나의 조각으로 착각하지만, 받아들이면 당신은 더 이상 하나의 조각이 아니라 전체가 된다. 당신의 진정한 본질이 나타나며 그것은 하느님의 본질과 하나이다."라고 설명한다.

성모 마리아는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말씀과 하나가 되어 말씀이신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다. 나자렛 시골 처녀였던 마리아는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우주나 역사의 한 조각이 아닌 우주를 지으신 말씀과 하나가 된다. 구세주의 어머니이자 천주의 모친이 되시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시는 놀라운 신비가 이루어진다.

어느 건축 회사에 퇴직을 앞둔 두 명의 건축가가 있었다. 사장은 두 사람에게 "회사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집 한 채씩 지어 주게"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사장의 부탁을 받은 두 사람의 집 짓기는 너무나 달랐다. 한 사람은 땅값이 싼 곳에 터를 잡고 품질이 떨어지는 자재를 사용했다. 어차피 회사를 그만두기에 책임질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최고로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시간과 돈을 더 들여 설계부터 충실했다. 작은 하자라도 고쳐가며 정성을 다해 집을 지었다. 일이 마무리되자 사장은 두 사람을 불러 봉투를 건네주었다. "이건 자네들이 지금까지 나를 도와준 것에 대한 성의일세." 봉투를 열어 보고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사장이 건네준 것은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지은 집문서였다. 한 사람은 허탈해서 주저앉았고, 다른 한 사람의 눈빛은 행복과 감사로 넘쳤다.

부모로서, 자녀로서, 신앙인으로서, 한 시민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소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그 결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말씀을 받아들인 마리아처럼, 사장의 부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건축가처럼 우리 삶의 역할을 하느님의 뜻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가족이나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내 입장만 주장하기 앞서 내가 먼저 상대방 입장에 담긴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면, 하느님 안의 새 가족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집이 되지 않을까? 우리에게 오셔서 천막을 치시려는 주님께, 우리와 함께 계시길 원하시는 주님께,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우리 안에 태어나실 주님께 고백하자.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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