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원가입  |   로그인  |   오시는 길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말씀의 숲
영성의 향기 말씀의 향기 수도원 풍경 세상.교회의 풍경 기도자리
말씀의 향기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03-01 09:26   조회: 6,060회

본문


사순 제2주간 월 -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주님,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독서)

나라가 망하고 닥친 시련과 고난의 한가운데서 다니엘은 진실한 통회 기도를 드린다.

"얼굴에 부끄러움"은 사물이나 사건 앞에서가 아니라 한 인격 앞에서 느끼게 된다.

법규의 위반이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하여 인격적 관계가 상했기에 애통하고 부끄럽다.

주님 앞에 나서지 못하게 부끄러운데도 죄를 고백하는 까닭은

주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함이 참회의 본질이다.

- 자기 죄를 보지 못한다면 반복되는 죄 속에 자신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 자기 죄만 보고 있다면 자신의 무력감에 질식하고 말 것이다.

- 죄와 더불어 이보다 더 큰 자비에 신뢰할 때 새로움이 시작된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복음)

용서하기 힘들다며 심판과 단죄의 악순환에 빠진 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대개 '내가 용서해도 상대방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느님의 자비를 보지 않고, 나와 상대방만 보면 용서는 손해 보는 일이기에 실행하기 힘들다.

하느님의 자비를 볼 때, 상대방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자비를 받아들인 내가 달라져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보시듯 새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때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자비를 베풀고, 용서하고, 나눠주는 삶이 열린다.

"너희가 남에게 주는 분량만큼 너희도 받을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가 저울에 달 듯 양이 정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남에게 주는 만큼 우리 마음이 열릴 것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마음이 열려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

마음이 열린 그만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비를 받아들인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해뜨는 마을 l 영보자애원 l 영보 정신요양원 l 천안노인종합복지관
교황청 l 바티칸 뉴스 lCBCK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l 한국 천주교 주소록 l 수원교구
우. 13827 경기 과천시 문원청계길 56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56 MunwonCheonggyegill Gwachon-si Gyeonggi-do TEL : 02-502-3166   FAX : 02-502-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