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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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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일 나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02-14 09:24   조회: 6,279회

본문


연중 제6주일 나해 - 깨끗하게 되어라.  

  


독서와 복음이 나환자 이야기다. 첫 독서는 "악성피부병(나병) 환자는 부정한 사람이므로, 진영 밖에 자리를 잡고 혼자 살아야 한다."는 율법의 엄격한 격리 규정이다. 나환자에게는 병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 사회로부터 격리였다. 누구든 병이 들면 간호를 받아야 하는데, 나병환자는 간호는커녕 격리라는 벌을 받아야 했다. 나환자 시인 한하운은 그 설움을 이렇게 읊었다.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 / 아무 법문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 /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 / 옛날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 /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벌이올시다."가족이나 이웃으로부터 격 거부당하면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처지를 거부하게 된다. 그러기에 나병은 하늘이 내린 형벌, 천형으로 불렸다.

복음 말씀은 나환자의 치유를 통해 천형과 같은 소외가 해소되는 과정을 전한다. 나환자는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고 도움을 청하였다." 율법의 격리 규정을 어기더라도 천형에서 벗어나려는 절박한 심정에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무릎을 꿇는 행위는 상대방에게 온전히 의탁하는 몸짓이다. 그런 심정으로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간청한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한 현실을 고백하며  주님께 의탁하는 모습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한다. 여기서 "가엾은 마음 splanchnistheis"의 어원상 의미는 "내장이 끊어지는 느낌(gut-wrenching empathy)"을 말한다. 성경 시대의 용례에 의하면 내장은 상처 입은 감정을 느끼는 부위였다고 한다.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은 단순히 불쌍한 생각이나 연민의 심정을 넘어서서 나환자의 아픔을 내장이 끊어지는 통증으로 공감하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으로 얼마나 아프냐고, 얼마나 외로웠느냐고, 얼마나 서러웠느냐고 나환자를 받아주신다.

그런 다음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신다." 성경에서 "만진다는 것"은 "내가 그대를 받아들인다."는 상징적 몸짓이다. 나환자에게 손을 대심으로써 예수님은 사회적 금기나 종교적 격리 규정을 어기면서 나환자를 한 인간으로 받아들이신다. 나병은 신체 접촉을 통해 전염된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신다. 나병이 전염되면 어떻게 하나? 실상 나병에 전염되듯 인간의 모든 죄악을  받아 짊어지실 주님의 운명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가엾은 마음의 공감과 손을 대시는 수용 다음에 예수께서 치유를 선언하시는데, '병이 나아라'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명령을 하신다. "빛이 생겨라"(창세 1,3)는  말씀으로 세상의 빛을 창조하셨듯,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새로운 창조를 선언하시는 말씀이다. 그 순간 나병이 나아  깨끗하게 된다. 이어서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라고 이르신다. 사제들에게 치유를 확인받는 이유는 공동체에 다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였다. 병의 치유와 더불어 공동체의 격리로부터도 해방시켜주시는 말씀이다. 이로써 공동체로부터의 소외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가 함께 극복된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라고 이르신다. 병이 나은 것은 특권으로 여기지 말라는 당부다.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이야기를 퍼뜨리는 마음에는 자신이 큰 은총을 입은 사람이라고 알리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많은 이의 주목을 받음으로써 그간의 설움과 소외를 보상받으려 한다. 남들 앞에 더 잘나 보이고, 더 크고, 더 훌륭하게 보이려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나환자와 예수님의 입장이 바뀐다.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었던 나환자는 공동체에 복귀하여 치유를 자랑하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나환자를 격리에서 풀어주신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신다.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생 빅토르 위고) 오늘 복음도 나병환자의 치유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일러준다. 나병환자는 깨끗해져서 격리에서 해방되지만 예수님은 나환자처럼 사람들로부터 격리된다. 여기서 십자가상의 희생이 암시된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보다 더한 절망 속에 인간의 모든 죄를 떠안으시고, 공동체로부터 격리되고, 아버지로부터도 차단된 심정으로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 46)라고 절규하신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조건 없이 하느님께 받아들여지고, 다시 살아나서 새롭게 살아갈 길을 열어 주신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이사야 53,4-5)

문둥이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외롭고 서러운 때가 있다. 질병으로, 노환으로, 배움이 짧아서, 벌어 놓은 재산이 없어서, 성격 탓에, 가족 때문에 등등 남들에게 뒤처지고 주변으로부터 소외될 때가 있다. 더 나아가 그러한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 자신이 싫으면 자기를 죽이기도 한다. 어떻게 이 악순환에서, 소외에서 해방될 것인가?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는 나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주시는 분이시다.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어 받아들이시듯, 주님은 나의 좋은 점뿐 아니라 나병처럼 위험하고 부족하고 힘든 부분을 받아 품어주신다. 그분께서 나를 받아주심을 체험할 때, 나도 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나를 받아들일 때 내 삶은 이전과 달리 새로 시작할 수 있다. 나를 알아주고 받아주고, 새롭게 하시는 분께서 주시는 삶은 이전 삶과 다르다. 신앙의 기쁨을 안고 희망으로 일어선다. 이를 체험한 바오로는 새로운 삶의 태도를 둘째 독서에서 이렇게 일러준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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