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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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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일 가해 –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6-01-19 14:24   조회: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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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일 가해 –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


지난 주일, 하느님에게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아들이고, 우리 또한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음을 묵상했다. 오늘 전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께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를 밝혀 준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신앙의 근본이다. 오늘 선포된 말씀을 통해 그 신비로운 관계를 성찰하자.


​복음에서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선언한다. 성경에서 ‘어린양’은 늘 구원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탈출기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던 날 어린양을 잡아 문설주에 그 피를 발랐다. 그날 밤 죽음의 사신이 이집트를 덮쳐 모든 맏자식을 쳤으나, 어린양의 피가 묻은 이스라엘의 집은 거르고 지나갔다. (파스카, 과월). 또한 레위기 16장은 대속죄일에 드리는 희생양 제의를 통해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고한다.


​이처럼 어린양은 누군가를 살리고자 대신 죽는 속죄 제물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구원을 기억하며 해마다 파스카 축제를 지냈고 (탈출 12, 1-14 참조), 성전에서는 매일 어린양 봉헌 제사를 거행했다. 이후 나라를 잃고 유배 생활을 하던 시기, 예언자 이사야는 장차 오실 구원자를 ‘주님의 종’으로 제시하며(제1독서) 그를 고난받는 어린양에 비유하였다(이사야 53, 1-12 참조). 흥미롭게도 당시 언어인 아람어로 ‘탈야(Talja)’라는 단어는 ‘어린양’인 동시에 ‘종’이라는 의미를 모두 품고 있다.


​요한 세례자는 바로 이 예언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한다. 여기서 ‘세상’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포괄한다. ‘죄’라는 단어의 어원은 ‘과녁을 빗나가다’라는 뜻이다. 이는 사소한 잘못을 넘어, 인간 본성에 뿌리박힌 죄성과 하느님의 뜻이라는 과녁에서 벗어난 삶의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죄를 ‘없애다(airōn)’라는 동사에는 ‘제거하다’라는 뜻과 함께 ‘자기 어깨로 나르다, 짊어지다’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죄 많은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살아가는 것은 나약한 인간의 서글픈 현실이다. 얽히고설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어두운 죄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까? 흔히 인간은 단죄와 처벌로 죄를 없애려 하지만, 그것으로 인간의 악한 본성까지 정화할 수는 없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선언은, 그분께서 인간의 악한 본성과 그 결과인 죄의 무게를 당신 어깨에 친히 짊어지심으로써 우리를 죽음의 멍에에서 해방하셨음을 의미한다.


​자식들을 위해 평생 고된 짐을 지느라 허리가 굽고 무릎이 상한 노인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더 이상 인생의 짐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예수님은 우리가 지고 가는 고단한 짐, 그 말 못 할 죄의 무게 아래로 당신 어깨를 쑥 들이밀어 그 짐을 당신에게로 옮기신 분이다. 그분은 내 죄를 대신 짊어지셨을 뿐만 아니라, 구원을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으신 참된 어린양이시다.


​어느 시골 마을, 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한 할머니가 있었다. 고된 농사일로 손마디는 굵어지고 손톱 밑은 늘 흙먼지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어느 날 도시에서 온 손자가 그 손을 보고 “할머니, 손이 왜 이렇게 지저분해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얘야, 이 손이 까매진 만큼 네 아비가 하얀 와이셔츠 입고 공부했고, 네 얼굴이 뽀얗게 핀 거란다. 내 손이 더러워져야 세상이 깨끗해지는 법이지.” 죄 없으신 순결한 어린양 예수님은 바로 이렇게, 우리의 더러움과 죄를 당신 온몸에 묻히셨다. 당신이 대신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를 깨끗이 씻어 주셨다. ‘하느님의 어린양’이 보여준 지극한 사랑이다.


​세례자 요한은 이 어린양을 알아보고 우리에게 "보라!" 하고 외친다. 우리는 미사 중에 성체를 모시기 전, 하느님의 어린양을 세 번 부르며 자비를 구하고, 이어서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 하는 사제의 초대를 받는다. 우리 가운데 계신 분, 세상의 죄를 짊어지신 그분을 바라보라는 초대다. 우리가 보고 모시는 그분만이 우리 짐을 대신 지고, 빗나간 우리 삶을 바로잡아 주신다. 그래서 하느님의 어린양을 보고, 받아 모시고, 마침내 그분과 하나 되어 우리 또한 어린양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초대를 재현한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어린양을 믿는 우리는 누구인가?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에서 신앙인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고 선언한다. 우리는 모두 성도로 불림 받은 귀한 존재들이다. 불교 신자들이 ‘성불하소서’라고 인사하고, 개신교 형제들이 서로를 ‘성도’라 부른다. 매우 아름다운 말이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들은 “감히 내가 어떻게 성인이 되겠는가, 지옥이나 면하면 다행이지.”라며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곤 한다. 이는 겸손을 가장하여 자신의 존엄을 깎아내리는 유혹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이 목숨을 바쳐 구원하신 우리를 스스로 천하게 여기는 것은 결코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비록 내세울 것 없고 거룩함에는 턱없이 부족할지라도, 하느님의 어린양은 우리의 나약함을 친히 당신 어깨에 메고 없애 주셨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미사 중 우리가 이 말씀을 고백할 때마다, 내 짐을 대신 지고 가시는 어린양과 진정으로 하나 되기를 기도하자.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라는 초대를 듣고 주님을 모실 때마다, 우리 또한 어린양처럼 이웃의 짐을 나누어지기를 다짐하자.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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