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수 -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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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주간 수 -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예.” 하고 대답하고는,
엘리에게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독서)
잠들었을 때 하느님이 세 번 부르셨지만 사무엘은 대답을 못한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신앙의 여정에서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자연이나 다른 사람이나 특별한 사건을 통하여
마치 표지판처럼 되풀이하여 인간을 부르시지만 인간은 이 표지를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엘리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고 계시는 줄 알아차리고, 사무엘에게 일렀다.
사무엘처럼 알 수 없더라도 부르심의 뜻을 물을 때 길이 열린다.
이를 해석하고 알려주는 사제 엘리의 역할이 오늘날 교회의 중재 역할이다(H. U. von Baltasar).
신앙이나 성경을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교회의 공식 가르침을 따라야 할 이유다.
그런데 교회는 부르심을 일러줄 뿐 응답을 대신하지 못한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알아차린 사무엘이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응답한다.
응답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각자의 몫, 응답한 때부터 주님이 그와 함께 계셨다고 성서는 전한다.
소명에 내가 응답할 때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시게 된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복음)
의학적으로 열이 난다는 것은 감염의 표지로 사람을 쇠약하게 하고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고 한다.
예수님은 열병을 앓는 인간의 "손을 잡아 일으키신다."
여기서 사용한 "일으키다(ἐγείρω egeiro)"라는 동사는 잠에서 깨어남(마태 1,24), 병상에서 일어남(복음),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사도 2,24; 로마 4,24)을 설명할 때 쓰인 동사다.
이 단어는 죽은 소녀의 소생, 오그라든 손의 치유, 중풍병자 치유, 소경 치유, 수난을 앞둔 결의 등에도 사용된다.
이처럼 "일으키다"라는 말은 신약성서에서 단순한 동작 동사가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 행위를 표현하는 동사다.
새로운 창조에 의한 인간 완성은 소박한 동작인 손을 내밀어 일으키심으로 비롯된다.
그러자 "열이 가신다".
열이 내린 것은 내면의 갈등을 일으키던 여러 요소들이 서로 화해한 모습이다.
사람을 일으키시는 주님의 손길은 우리 내면이 싸움을 멈추고 아름답게 어울려 서로 "시중을 들게" 한다.
이 치유는 신비스러운 능력의 과시가 아닌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사랑의 나눔이었다.
열이 많이 나는 세상에서 뒤숭숭한 마음, 방황과 혼동, 화가 난 기분, 갈 길이 안 보이는 때는
내게 손을 내밀어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받아들일 때다.
그러면 내면의 소리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아름답게 어울려서 시중을 들며 당신을 찬미하게 된다.(A. 그륀)
예수님은 이제 손이 아닌 살과 피를 내어 주시며 우리를 깨우시고, 일으키시고, 거듭나게 하신다.
[출처] 말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