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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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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04-10 08:44   조회: 6,120회

본문


부활 팔일 축제 토 -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엠마오에서 돌아온 두 제자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식탁에 직접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왜 그렇게도 믿기 어려웠을까? 무엇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믿지 못하게 할까?

부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제자들이 머무른 곳은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이었다.

제자들의 마음 상태를 전하는 표현이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의 기억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나 마음에서 지우기 힘든 슬픔이 있다.

"슬픔"이 믿기 힘든 이유였다.

"부활은 신앙의 신비로써, 이 신비를 받아들이기에는 필연적으로 저항이 따른다.

신앙의 기쁨보다는 인간의 슬픔에 잠기고자 하는 경향,

하늘 높이 고양되기보다는 땅 아래의 고뇌에 머물고자 하는 경향이 그 저항이다.

이러한 경향의 바탕에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자기애(自己愛)'가 깔려있다.

물질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영성 생활에서도 自己愛는 자신의 방식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완고하게 만들어 신뢰를 가로막게 하는 원인이다."(A. Vanhoye)

자신을 끊어 버리는 것은 자신의 슬픔조차 끊어버리는 것이다.

"슬픔은 의심과 착오의 어머니다."(초세기 교부)

슬픔의 내면에는 자기애의 그림자가, 자신의 환상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슬픔을 넘어설 수 있을까?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듯 주님은 슬픔에 잠긴 우리에게 나타나신다.

내 마음이 자기애(自己愛)의 그림자 속에 슬픔과 불신 가운데 있더라도 주님께서는 다가오신다.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고" 슬픔을 넘어서는 믿음으로 초대하기 위해 다가오신다.

그렇게 다가오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을 건네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와 하나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슬픔을 넘어서고,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고 명하시는 사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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