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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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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나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05-02 19:05   조회: 6,228회

본문


부활 제5주일 나해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금언이 오래전부터 회자되어왔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을 두고 철이 든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을 알면 어려운 삶에서도 의미를 찾지만, 자신을 모를 때는 풍족해 보이는 삶도 공허하고 무의미해진다. 신앙인으로 우리는 누구인가?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통해 일러 주신다.

주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선언하신다. 주님께서 포도나무이고 우리가 가지라는 말씀은 주님이 우리 존재의 바탕이고, 우리는 주님과 붙어있어야만 존재 의미를 지닌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결코 우연히 출생한 존재도 아니고, 세상에 홀로 던져진 존재도 아니다.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부족하더라도 주님께 붙어 있으면 하느님의 아들, 딸로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되는 약속을 받은 존재다.

사람됨과 그 행동의 관계에 관해 토마스 아퀴나스는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존재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 혹은 신원을 의미하고, 행위는 그 사람이 행하는 능력이나 기능을 의미한다. 복음에 비춰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나는 착한 목자요 너희는 양떼다"라는 진술은 존재에 관한 표현이고,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는 열매를 맺는다; 내 양떼는 내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라는 표현은 행위에 해당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진행 순서다. 내가 누구인가 하는 존재가 나는 무엇을 하는가 하는 행위에 우선한다는 점이다. 존재가 우선하지 않으면 행위는 의미를 잃는다.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가 된다.

현대의 상황은 존재보다는 행위가 강조되는 추세이다. 사람들을 소개하며 '~를 잘하는 사람', '~에 유능한 사람'이라고들 말한다. 즉 행위 중심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신앙에서는 이와 달리 존재가 우선한다. 존재가 행위에 우선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가령 자녀를 돌보고 살림을 잘해서 어머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존재 사실 때문에 자녀를 돌보고 살림을 하는 행위가 뒤따른다. 행위가 우선한다면 어머니가 병들거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이미 어머니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 잘하는 파출부가 아내나 어머니를 대신할 수 없다. 늙어도 어머니는 어머니이고 병들었어도 아내는 아내다. 말썽만 피우든 유능하든 자식은 자식이다. 존재가 행위에 우선하는 이치다.

우리의 존재, 즉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신앙인,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은 가지는 그 모양이 아무리 훌륭해도 참된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라고 이르신다.

누구나 인생에서 열매 맺기를 원한다. 신앙인으로서 가지들이 열매를 맺는 비법은 "주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 하나뿐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많은 열매를 맺으라고 명령하지 않으시고 "내 안에 머물러라." 하고 이르셨다. 스스로의 힘으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해방되어, 주님의 힘으로,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영양소를 공급받으라는 말씀이다.  "기는 놈이 위에 뛰는 놈이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능력 있고 똑똑하다 하더라도 그 사람 보다 더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하나 더 보태어 "나는 놈 위에 붙어 다니는 놈 있다." 고들 말한다. 진짜 출세를 하는 사람은 실세가 누구인지 빨리 파악해서 줄 서기를 잘 하는 사람이라는 현실을 반영한 말이다. 그런데 영적 차원에서 보면, "나는 놈 위에 붙어 다니는 놈", 즉 가장 센 놈은 바로 예수님께 붙어 있는 신앙인이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있을 때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붙어있는 것, 예수님 안에 머무는 길은 곧 사랑하는 것이다. 둘째 독서에서 요한은 이를 전한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예수님께 붙어서 맺게 되는 열매는 어떤 열매일까? 주님께서는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라고 이르신다. 우리가 열매는 맺는 것이 어떻게 하느님께 영광이 될까? 어떤 사람이 남들의 지탄을 받으면서 살다가 신앙인이 되어 변화된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변화된 그 사람만 칭송하지 않고 '도대체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시기에, 저 사람이 저렇게 변화되었을까?' 하며 하느님을 칭송한다. 부활을 체험한 사도 베드로나 예수님을 만난 바오로, 방탕한 삶에서 회심한 사막의 성인 샤를르 드 푸고, 한국의 순교자 등 성인들의 삶이 그러했다. 인간이 왜 창조되었는가?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기 위해서다. 우리 삶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때,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이루게 된다.

같은 돈을 벌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냥 호의호식하면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목적 없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로 언젠가 시들기 마련이다. 넉넉한 보수나 편안한 가정이라는 열매를 누리더라도 결국 마음은 공허하고 우울한 가운데 인생이 시들어 말라버린다.

이와 달리 우리가 가지임을 알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사람, 사랑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이는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수액을 취하듯 예수님의 사랑을 언제나 공급받는다. 그러면 나무의 수액이 가지에 퍼지듯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온 존재에 퍼지게 된다. 그렇게 가지가 나무에 온전히 결합된 이 사랑의 합일 상태에서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 그것이 우리가 맺어야 할 진정한 열매인 영원한 생명이다. 그 생명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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