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간 화요일
본문
연중 제17주간 화 - 가라지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 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예수님 시대에 사회를 구성했던 주요 세력들은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시도를 하였다고 한다.
열심당원들에게 가라지는 식민지 지배자 로마인들, 이들을 당장 뽑아버리려는 조급함으로 폭력 혁명을 기도했다.
바리사이들에게 가라지는 율법을 어기는 이들, 이들을 뽑아버리는데 열중한 나머지, 용서와 자비를 외면했다.
쿰란(에쎄네) 종파에게 가라지는 세속 사람들, 이들로부터 자신들을 뽑아내어 광야에서 은수 공동체를 형성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마리아인들을 가라지로 여겨 하늘의 불로 태워버리려 하였다(루카 9, 52-56참조).
어느 시대, 어느 공동체이든 가라지 같은 사람이 보이기 마련이고 이들을 제거하려는 시도도 뒤따랐다.
함께하는 데에 걸림돌만 되고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듯한 천덕꾸러기들은 늘 눈에 띈다.
곰곰이 살펴보면 실상 개인의 내면에서도 밀과 가라지가 섞여있지 않던가?
하나씩 뽑아 버릴 수도 없고 밭을 갈아엎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인데, 이 가라지들을 어찌할 거나?
예수님께서는 가라지가 우리가 뽑을 대상이 아니라 추수 때 천사들을 통해 처리할 대상이라고 이르신다.
그렇다면 가라지는 계속 주목할 차별, 증오, 소외의 대상이 아니라
언젠가 정리하실 주님께 눈을 돌리게 하는 도구가 아닐까?
가라지를 보며 뽑아버리려는 마음을 넘어서서 추수의 주인이신 주님을 볼 때,
좋은 씨가 담긴 내 마음 밭이 좋은 땅으로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공동체나 내 안의 가라지는 어쩌면 "내 등의 짐"일지 모른다.
***************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였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습니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 짐 슬픈 이별의 짐 들이
내 삶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정호승, 내 등의 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