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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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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09-04 16:09   조회: 5,346회

본문


연중 제22주간 금 -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종교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단식, 철야 기도 등 희생에 열중이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신념을 관철하는 단식은 종교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행해진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한 단식은

삶의 한 부분을 희생하여 하느님께 도달하려는 노력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신앙 형태였다.

그런데 단식 등 인간의 희생이나 노력만으로 신적인 차원에 도달할 수 있을까?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예수님의 경우, 공생활을 준비하실 때 단식하셨지만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는 단식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삶 전체가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는 잔치이자

하느님과 인간을 하나로 묶는 희생 제사인데 별도의 단식이 무슨 뜻이 있었겠는가?

단식 등 희생과 보속은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행동이었다.

따라서 하느님의 아들과 함께 있는 사실이 신랑과 함께 있는 잔치로, 단식의 의미를 채우고 넘어선다.

신랑이 관건이다 - 주님과의 관계가 단식에 의미를 준다.

주님과의 관계가 없다면, 단식뿐 아니라 목숨을 바친들 무슨 소용인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새 술인 당신을 담기 위해 우리가 새 부대로, 새 마음으로 열려 있으라는 초대로 들린다.

새 술인 예수님을 담을 새 부대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지닌 사고방식(헌 부대)의 포기가 새 부대로 변화되는 길 아닐까?

"하느님의 은총에는 일정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이 섭리 앞에 인간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정말 자유스러운 분, 사람은 다만 단순히 그 자유를 수용할 뿐이다." (A. Vanhoye)

헌 부대를 버리듯 자신의 사고를 포기하고, "그분(그리스도)을 통하여, 그분 안에"(독서) 새 부대를 마련하여

그저 감사하고 늘 기뻐하며 은총과 섭리로 존재를 채우라는 초대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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