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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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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일 나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08-22 09:48   조회: 5,467회

본문


연중 제21주일 나해 -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오늘 복음은 지난 다섯 주 동안 이어진, 빵을 많게 하신 표징에 관한 담론의 결론 부분이다. 생명의 빵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투덜거리며 예수님을 떠나기 시작한다. 그러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신다. 이 물음에 오늘 복음 전체의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사람들은 빵도 먹여주시고 병도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왜 떠났을까? 빵의 기적을 행하신 다음 예수님은 빵의 의미에 관한 긴 말씀을 들려주셨다. 당신은 하늘에 올라갈 것이고 그러한 당신을 우리는 먹어야 하고, 당신은 영적인 분이고 육적인 것은 쓸모가 없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셔야 우리도 당신을 따르고 등등, 신앙 없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이다. 자기 기준으로 상식 밖이라고 판단하자, 주님의 말씀이 거북스럽게 드렸을 것이고, 그렇게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난다.

주님의 말씀이 왜 귀에 거슬릴까? 남의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편하고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말이 자기의 기대에 어긋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귀에 거슬리게 된다. 자신의 기대와 자기 사고력, 자신의 경험을 절대적 판단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듣기 좋은 부분, 편한 부분만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 말씀이 불편하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힘드니까 투덜대다가 떠나간다. 그런 이들에게는 "내가 줄 빵, 나의 살과 피"인 예수님의 무조건적 사랑도 멀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붙잡지 않으신다. 제자들의 집단적 이탈로 하느님 나라 선포는 실패한 듯 보인다. 이 상황은 성서학자들은 '갈릴래아 예수 운동의 위기'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주님을 떠나지 않는 믿음, 진정한 믿음은 무엇일까?

한 나그네가 산길을 가던 중. 날이 저물어 밤이 되었다. 그때 굶주린 늑대가 나타나자 나그네는 온 힘을 다해 도망치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졌다. 위기 상황에서 겨우 나무줄기를 붙잡고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앞길이 깜깜했다. 벼랑 위로 올라가면 굶주린 늑대의 먹이가 될 것 같고, 벼랑 아래로 내려가자니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발을 뗄 수 없었다. 나그네는 마지막 수단으로 하느님께 기도했다. “하느님 살려 주셔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성당도 잘 안 나가고, 필요할 때만 기도하고, 아쉬울 때만 헌금을 했습니다. 저를 살려만 주신다면 주일도 지키고 헌금도 잘하고 봉사도 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간절한 기도에 하느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셨다. “너의 간청을 들어 주겠다. 지금 붇잡고 있는 그 나무줄기를 놓아라. 그러면 넌 살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나그네는 깜짝 놀라며, “뭐라고요? 이 나무줄기 때문에 제가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인데, 나의 생명과도 같은 이 줄기를 놓으라고요? 전 못합니다. 그런 말이나 하실 거라면 전 당신이 필요 없습니다.” 때마침 겨울을 재촉하는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나그네는 비와 늦가을 밤의 추운 날씨에 얼어 죽고 말았다. 날이 밝았을 때 사람들은 땅에서 불과 1미터 위에 있는 나무줄기를 잡고 얼어 죽은 한 사람을 발견하였다.

참된 믿음은 자신을 놓아버리고 주님을 받아들이는 행위다. 자기를 놓아버림으로써 자기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바뀌는 변화가 믿음이다. 자기를 살려주는 것으로 믿었던 나뭇가지를 놓아버리듯, 자신의 선입견과 집착과 자신의 편의와 자기 경험이나 지식에 의존하던 삶을 놓아버리지 않고는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이 믿음은 결코 양다리 걸치듯 자신과 하느님, 자기의 이익과 주님의 뜻을 함께 거머쥘 수 없다.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는 상황에서는 영원한 생명의 빵인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믿음의 속성은 그러기에 분명한 결단, 근본적인 선택을 요구한다.

제1독서에서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에 이르는 긴 여정을 마무리하며 계약을 갱신한다.계약의 핵심은 "누구를 섬길 것인지", 그들을 해방시키신 주님(야훼)인지 다른 신인지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분(야훼)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라고 사람들은 고백한다. 이스라엘은 역사를 통해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다. 약속에 충실하지 않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혹독한 재앙을 겪는다. 복음에서 자신을 놓아버리지 못해서 투덜대며 떠나는 이들을 보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던지신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라는 질문이나,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라는 여호수아의 외침이나 모두 오늘 우리에게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시는 말씀이다. 이 물음은 회피할 수 없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물음이다.

그 물음에 우리는 이미 결단을 내려 신앙을 고백한 이들이다. 우리는 세례 때 마귀를 끊어버리고 주님을 믿는다고 "예" 하는 결단을 내렸다. 성체를 모시면서 "그리스도의 몸" 앞에 "아멘" 하고 우리가 선택한 신앙을 고백한다. 그 선택은 형식적인 답변이 아니다. 내게 이득이 없다고 취소하거나, 지금 급한 사정이 생겼다고 잠시 유보할 수 있는 결단이 아니다.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결단이자, 하루하루를 걸쳐 온 생애에 책임이 따르는 우리의 선언으로, 늘 새롭게 반복할 결단이다.

구약에서 이집트를 탈출하는 여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반항하고 수근 대었듯, 신약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렵다고 투덜대며 사람들이 떠났듯, 지금 우리 안에서도 여러 수군거림이 들려온다. 신앙의 여정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과 납득할 수 없는 처사들을 보며 '이래서야 어찌 믿겠는가? 어찌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치나? 이렇게 믿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불평불만이 내면에서 들리는 때가 있다. 바로 그때가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라고 물으시는 예수님을 만날 순간이다.

그리고 자신이 매달린 나무줄기에서 손을 놓듯, 지신을 내려놓고 목숨을 거는 진지함으로 주님을 받아들이며 답변을 드릴 순간이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 대답은 자신이 붙잡은 나무줄기를 놓아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선언이다. 베드로의 심정으로 우리도 고백하자: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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