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카 성야 -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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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카 성야 -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성금요일인 어제, 우리는 목숨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인 십자가를 경배하였다. 그런데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이 모든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예수님이 인간을 사랑해서 좌와 한계와 아픔을 지고 돌아가셨다고 내 삶에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예수님 이외에도 세상에는 남을 위해 죽는 이들이 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런 희생과 무엇이 다른가?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사랑이 죽음보다 강한(아가 8, 6 참조) 신비가 실현되었다.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1코린 15, 26)이다. 이 죽음이, 인간이 건널 수 없는 한계인 죽음이 주님의 죽음으로 극복되었다. 게다가 이 부활은 우리도 당신의 신비에 참여시키시는 부활이었다. 이 신비가 너무도 심오하기에 오늘 전례는 4부로 나누어 그 신비를 재현한다.
제1부에서 어둠이 가득 찬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이 비치는 빛의 신비를 기념했다. 죽음을 이긴 빛이신 주님을 상징하는 큰 부활초에서 우리 각자의 작은 부활초로 빛을 옮겨 받음으로써, 죽음의 어둠 속에 사는 우리도 빛이 되는 신비를 재현했다. 어둠과 죽음으로 운명 지워진 인간이 생명의 빛이신 주님과 하나가 된 이 신비에 '파스카 찬송'으로 주님을 찬양하였다. "눈으로 본 적 없고 귀로 들은 적 없는 주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1코린 2,9 참조)을 찬미하며 그리스도가 나의 빛이라는 고백을 드렸다.
제2부 말씀의 전례에서는 구원의 역사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들었다. 하느님이 만드셔서 보시기에 참 좋았던 태초의 세상은 우리 삶과 신앙이 시작되었을 때의 순진무구함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존엄한 인간이 탐욕에 빠져 종살이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이를 외면하지 않고 모세를 통해 종살이로부터 해방하신다. 이렇게 백성을 불러 모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또다시 하느님을 외면하여 나라가 멸망하고 유배를 당한다. 이에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새로운 계약, 새로운 구원을 약속하셨고, 서간은 그 구원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되살리신 하느님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게 하신 기쁨을 성대한 알렐루야로 찬미하였다.
복음은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라는 놀라운 소식이 선포된다. 이를 선포한 증인들은 제자들이 도망치는 상황에서도 십자가를 지켰던 여인들이었다. 무덤 입구의 큰 돌을 치울 힘도 없이 그저 사랑하는 분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기름을 바르려는 소박한 마음으로 꼭두새벽 주님을 찾은 여인들이 가장 먼저 부활의 신비를 체험한다. 부활은 물리적으로 증명된 사건이 아니라 사랑할 때 알게 되는 믿음의 진실이다. 순수한 여인들의 사랑을 통해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놀라운 부활 사건이 과거가 아닌 지금, 타인이 아닌 내게 재현되는 신비를 제3부 세례 예식에서 기념한다. 세례는 태초에 하느님이 창조하신 참다운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부활 성야 전례의 핵심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신비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서, 내가 어둠의 세계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건너뛰는 파스카 신비의 재현이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 3-4) 예수님이 죽으셨다 부활하셨듯 우리도 자신에게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는 놀라운 신비가 바로 세례 성사이며, 이 거룩한 밤에 우리는 그 약속을 갱신함으로써 하느님 자녀의 존엄성을 되찾는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가 세례식 질문과 답변에 담겨있다. 먼저,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죄를 끊어버립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죄란 하느님을 멀리하는 것, 즉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지 않는 태도다. 그다음,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악의 유혹을 끊어버립니까?"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악의 유혹은 하느님 대신 자신이 삶의 중심이 되라고 유도하는 속임수를 말한다. 끝으로, "죄의 근원이요, 지배자인 마귀를 끊어버립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마귀란 속이는 자, 거짓을 합리화시키는 존재로, 하느님 없이 살아도 된다고,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어둠의 지배자다. 세 질문에 등장하는 죄와 악과 마귀는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본래 지닌 존엄성을 잃어버리게 하고, 삶의 중심을 흔들어 하느님의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여, 인간을 어둠과 죽음으로 이끄는 세력들이다. 우리가 받은 질문은 이 세력에서 해방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으로, 우리는 인격을 걸고 진실하게 답변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악의 노예가 아니라고, 어둠의 자식으로 죽어가지 않겠다고, 하느님의 자녀로 빛의 자녀로 새로 나겠다고 분명히 고백하자. 우리의 고백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게 한다.
제4부에서 성찬의 전례가 이어진다. 죽음을 물리치신 예수님은 죄와 자신에게 죽고 세례로 다시 태어난 우리 안에 현존하길 원하신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성체성사를 통해 내 안에 모심으로 우리와 예수님의 일치가 이루어진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가, 살과 피로 내 안에 오셔서 나와 하나가 되시고, 내 삶의 현장에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
“그렇습니다. 주님,
내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다시 살아나셔서 결코 죽지 않으시는 당신의 은총입니다.
주님, 주님의 이 새로운 현존 양식,
성체 성사와 교회의 생활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현존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소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하소서.
주님으로 우리의 인생이 새롭게 다시 시작되었음을 보고,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다른 것을 찾지 않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우리 사이에 계심을 알아 뵙고 기뻐하게 하소서.” (C.M. Martini)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