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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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월 - 안식일에 ……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독서)
해석상 의견이 분분한 구절인 "그리스도의 환난"이란 예수님이 받으신 수난이 아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그리스도의 환난은 조금도 모자람 없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이들의 환난이다(주석성경 각주 참조).
그리스도와 일치하려면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그대로 가야 하는데, 그 길은 죽음과 부활로 완성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아직 죽지 않고 부활하지 않았기에 그 환난의 모자란 부분을 각자 채워야 한다.
그 환난은 자신의 힘이 아닌 그리스도의 힘으로 주님과 하나 되어 채우는 환난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환난.
결국 질병이나 환난은 하느님의 징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난과 내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고통은 회피할 것도, 짓눌려 질식할 것도 아나라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초대- 수난당하신 주님의 초대다.
환난과 박해를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신 순교자들처럼.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복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입장에서 질병이나 재앙은 하느님의 징벌이었다.
이들에게는 안식일에 하느님의 재앙을 풀어주는 예수님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오그라든 손보다도 더 단단히 오그라든 마음으로 예수님을 지켜보는 못마땅한 눈초리가 보인다.
그 마음에 하느님의 신비,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질 수 있을까?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루카에게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당신 백성을 종살이에서 구원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본디 모습으로 회복시키시는 해방자이시다.
따라서 루카에게 안식일을 기념하는 최고의 방식은 인간을 본디 형상대로 회복시키고,
신적인 품위에 대하여 기뻐하고, 아름답게 사람을 창조하신 분을 찬미하는 것이었다." (A. 그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원형을 돌아보며 감사하며 쉬는 날이 '안식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안식일은, 오그라든 손, 병든 마음을 회복시키는 가장 적합한 날 아닐까?
안식일에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질병은 더 이상 하느님의 징벌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질병이나 환난은 오그라든 마음을 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초대로 받아들이고,
고난은 십자가상의 주님과 하나가 되는 고통의 신비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으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