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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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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일 다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1-12-05 11:03   조회: 4,954회

본문


대림 제2주일 다해 -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주님을 깨어 기다리라는 말씀을 들으며 지난 주일 대림절을 시작하였다. 오늘 성경 말씀은 어떻게 주님을 기다려야 할지 일러주는데, 회개로 기다리라고 하신다. 사람들은 회개를 뉘우침이나 반성으로 오해한다. 그 결과 진정한 회개에서 멀어진다. 본래 뜻을 살펴보면 회개 (μετάνοια)란 μετά (다른)와 νοέω (생각, 길)의 합성어이다. 즉 "이제까지 살아온 생각이나 길에서 방향을 바꿔서 다른 생각으로 다른 길로 간다"라는 의미다. 단순한 뉘우침이나 잘못을 반성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다. 삶의 중심을 자기로부터 하느님으로 바꾸는 것이 회개의 본 뜻이다. 그러한 변화 없는 반성이나 후회는 회개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원주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 기차를 탔는데 한참 가다 보니 양평역이 아니라 제천역이 나왔다. 기차를 잘못 탔다. 서울 방향 기차를 탔어야 했는데 부산방향 기차를 탔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얼른 내려서 기차를 바꿔 타야 한다. 기차를 바꾸어 타려면 역에 내려 한참 기다려야 하는데 날씨는 춥고, 환승 과정도 복잡하고, 빈자리가 없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번거로워 그냥 앉아 있다면 어떻게 될까? 목적지에서 점점 멀어진다. 부산행 열차 안에서 아무리 서울 가서 할 일을 계획해야 소용이 없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서 아무리 천국을 꿈꾸며 자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헛일이다. 기차를 갈아타듯 길을 바꾸는 것이 회개다.

회개를 반성과 후회로 알아듣고, 회개할 죄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회개할 죄가 없다는 말은 내 삶에서 바꿀 것이 없다는 말이고, 이는 자기중심의 삶을 계속 살겠다는 이야기다. 그런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오실 수 없다. 자기가 중심이면 자신이 주님이기에 주님이 필요가 없는데 주님께서 오실 이유가 없다. 자기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방향을 바꿀 때 주님께서 오신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첫 독서는 새로운 세상을 예고하며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 영광 안에서 안전하게 나아가도록, 높은 산과 오래된 언덕은 모두 낮아지고, 골짜기는 메워져 평지가 되라고 명령하셨다."라고 전한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과 언덕들은 낮아지게, 굽은 길은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라."라는 이사야 예언을 인용하며 회개를 선포한다. 무엇을 회개할지 상징을 통해 일러주는 말씀이다.

"높은 산과 오래된 언덕"을 낮아지게 하라는 말씀은 글자 그대로 산을 깎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삶을 바꾸라는 은유다. 여기서 높은 산은 우리의 본 모습을 가리는 교만으로, 오래된 언덕은 굳어버린 나쁜 습관으로 풀어 볼 수 있다. 남보다 건강이 좋아서, 재산이 많아서,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집안이 좋아서, 많이 배워서, 나이가 많아서, 신앙생활을 오래 해서, 등등 남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높은 산이다. 높은 산을 고집하는 한 주님은 거기 가로막혀 우리에게 오실 수 없다. 남들 앞에 높이 서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 앞에 엎드린 자세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 회개다. 그렇게 하느님 앞에서 낮아지면 어린 아기의 낮아진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을 만난다. 또한 오래된 언덕처럼 굳어진 나쁜 습관을 손발톱 깎아내듯 잘라버려야 아기 예수님을 안을 수 있다.

"메워져야 할 골짜기"는 낮아져야 할 산과는 반대로,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열등감으로 볼 수 있다. 가진 것이 없어서, 배우지 못해서, 재산이 없어서, 나이 들고 힘이 없어서 하느님께서 내게 오시지 못한다고 지레 포기하는 태도다. 이렇게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불신과 실망과 낙담과 체념의 골짜기를 메우는 것이 회개다. 자신의 못난 모습만 바라보며 한탄하는 시야를 바꿔서 이렇게 부족한 나를 위해 오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을 보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눈길을 나에게서 하느님께로 돌리고, 나의 못남에서 하느님의 자비로 마음을 바꿀 때 작아 보이기만 하는 나에게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아기로 구세주가 오신다.

"굽은 길"은 왜곡된 마음과 비뚤어진 태도로 폴이 할 수 있다. 자기와 다른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 남이 하는 일은 무조건 비난하고, 사정도 모른 채 쉽게 남의 말을 하며 불평불만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이렇게 굽은 길로 주님께서는 오시지 못한다. 내 눈에는 타인이나 세상사가 못마땅할지 모르지만 하느님 눈으로 보면 모두 다 불쌍하다. 내 눈이 아닌 하느님 눈으로 보려는 방향 전환이 회개다. 그러한 회개로 굽은 길을 바로 펼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태어나신다. 

"거친 길"은 자신의 입장만을 강요하는 거친 언행을 의미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를 두고 분노사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로 씩씩거리며 화난 표정으로 금방이라도 싸울 듯한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화가 잔뜩 난 거친 사람들 안으로 주님께서 오시기는 힘들다.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하라 시는 말씀은 험한 말, 야박한 태도를 바꿔서 부드러운 말로 서로 위로하고 따뜻한 태도로 서로를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부드럽기 그지없는 아기로 태어나셨듯, 우리가 부드럽고 따뜻할 때 주님께서 오신다.

결국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라는 말씀은 삶의 기준을 자기 자신이나 세상 일에서 하느님으로 바꾸라는 말씀이다. 잘못 탄 기차는 바꿔 타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우리 삶의 목적지인 영원한 생명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으로 살던 길을 하느님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회개 없이는 구원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이다.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진정한 회개가 가능할까? 기차를 갈아타는 것이 번거롭고 힘들어 보이듯, 회개는 처음에는 두렵고 힘들다. 그러나 새로운 삶으로 바꾸려 결심하면 주님께서 분명히 도와주신다. 그러기에 바오로 사도는 둘째 독서에서  "여러분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라고 이르신다.

그렇게 확신하며 바오로 사도는 오늘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대림 제2주일 다해 -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작성자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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