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일 다해
본문
사순 제2주일 다해 - 하늘의 시민이 되기 위하여
사순 두 번째 주일 말씀은 땅에 매여 사는 우리에게 하늘을 보며 살라고 초대하신다. 첫 독서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라고 이르신다.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는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곳에서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라고 전한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가셔서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이는 모습으로 변모하신다. 이 모든 말씀에서 땅에 묶여 사는 우리도 사순절에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하라는 초대를 듣는다.
우리가 매어 있는 땅에서의 일상은 고달프다. 하늘의 별빛을 보며 신앙을 다지던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강건하지도 않고, 우리가 하늘의 시민이라는 말씀에 확신을 갖기도 어럽다. 우리 자신이 산 위의 예수님처럼 빛을 발하지도 못한다. 열심히 살려고 다짐하지만 먹고사는 일이 우리를 하늘만 쳐다보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하늘을 향할 때면 늘 어려움이 따른다. 하느님과 계약을 체결한 아브라함은 그 증표로 짐승을 잡아 반으로 갈라놓고 제사를 지낸다. 약속을 어기면 자신도 반으로 잘라질 것이라는 경고가 담긴 제사다. 이 제물 위에 솔개들이 달려들어 아브라함은 이를 쫓아야 했지만,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라고 전한다.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다.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늘의 시민으로 살려는 우리 주위에 "이 세상 것만 생각하는 십자가의 원수들"이 많은데,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여기는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라고 경고한다. 하늘을 향하는 삶, 믿음의 삶에는 방해물이 끼어든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하느님께 바친 제물에 달려들던 솔개처럼 믿음을 어지럽히는 방해물이 득실대고 세상 걱정에 깊은 잠과 암흑이 쏟아지는 땅에서, 제 뱃속만 채우려는 십자가의 원수들이 사방에 퍼져있는 오늘날, 어떻게 하늘을 보고, 어떻게 우리도 예수님처럼 변모되어 하늘의 시민이 될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그 길을 찾아보자.
먼저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한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변모를 본다. 아침에 눈을 뜨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예수님과 함께 있으려고 애쓸 때 예수님은 당신의 본 모습을 일터에서, 이웃들 가운데서 드러내신다. 그리고 산으로 가야 한다. 거룩한 변모에 앞서 예수님은 산에 오르시어 기도하셨다. 성경에서 호렙산, 시나이산, 타볼산, 올리브 동산, 골고타산 등 산은 한결같이 하느님을 만나는 곳을 상징한다. 우리가 오를 산은 지리적인 산이 아니라, 복잡한 일상에서 피해 주님께서 계신 곳, 고요한 곳으로 마음을 드높여 기도하는 곳이다.
거기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모습이 하얗게 빛났다고 전한다. 베드로는 이 황홀한 광경에 놀라서 초막을 짓고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머무시던 천막(탈출 25,26 참고), 즉 성막은 성전으로 바뀌였었다(1열왕 8장 참고).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바로 성전이심을 이르셨다(요한 2, 19-21 참고). 그러니 변모의 현장에 천막을 지을 필요가 없어졌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 머무름이 곧 천막에 머무르는 길이다.
변모의 순간에 모세와 엘리아가 나타났다. 구약의 율법과 예언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이 말씀은 신, 구약의 통합,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하느님 섭리의 연속성을 표현한다. 이 상황에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고 복음은 전한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의미하는 "세상을 떠나실 일"이란 구절에 사용한 단어는 "탈출 exodus"이다. 이 단어는 유대인이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난 출애급 사건에 쓰인 단어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는" 죽음은 파멸이나 끝이 아니라 노예살이에서 해방되는 "탈출"이란 의미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심은 새로운 탈출, 즉 죽음을 거쳐 부활에 이르는 파스카의 여정이라는 말씀이다.
변모의 마무리에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시는 말씀이 들려왔다고 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는 들을 것이 너무 많다. 하루 종일 소음 속에서 허덕인다. 소음을 피하려고 이어폰을 끼고 다닌다. 그러니 예수님의 음성이 우리 귀에 들리기 힘들다. 소음이 아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경에서, 그리고 우리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이웃의 어려움 속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변모된다는 초대로 들리는 말씀이다.
오늘, 예수님이 보여주신 변모, 예수께서 앞서 가신 "탈출의 여정"은 신앙인이 걷는 구원의 여정이다. 이집트 노예살이에서의 탈출이 아주 먼 예표였고, 예수님의 변모가 가까운 예표였듯, 죽어야 부활하는 파스카의 신비가 구원의 길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우리가 이 땅의 종살이에서 탈출하여 하늘의 시민이 되는 길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가는 길이다. 우리도 죽어야 탈출한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적 자아에서 죽고, 나와 다른 이웃을 적대시하는 편견에서 죽는 것이 하늘로 탈출하는 길이다. 아브라함의 제물에 달려들던 솔개처럼 자신을 향한 질긴 집착에서 죽고, 베드로처럼 황홀한 변모 현장에 집을 짓고 머물고 싶은 감격과 자기만족에서도 탈출하자. 당신의 말씀을 들음으로 건너가는 길, 일상의 죽음으로 부활을 이루는 해방의 길, 파스카의 길을 떠나자.
전염병에 선거에 전쟁 등 혼란한 세상이다. 그래서 더욱 이 소리 저 소리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겨,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는 더욱 힘들다. 이러한 우리에게 오늘 들려주시는 성경 말씀을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이자.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올라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하느님께 바치는 정성을 빼앗으려는 세상의 솔개를 쫓아 버리자. 탐욕과 이기심으로부터 죽고 주님 안에서 새로 나는 탈출의 여정을 예수님과 함께 한다면 우리도 예수님의 변모를 체험하고, 예수님처럼 변모되는 은총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늘의 시민이 될 것이다.
[출처]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