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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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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카 성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2-04-16 11:31   조회: 4,278회

본문


파스카 성야 -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성금요일인 어제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셨기에 세상 구원이 달린 십자가를 경배하였다. 그런데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이 모든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예수님이 인간의 나약함과 아픔을 지고 돌아가셨다고 내 삶에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예수님 이외에도 세상에는 남을 위해 죽는 경우가 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런 희생과 어떻게 다른가?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홀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이들이 당신처럼 죽고 부활로 건너가는 신비에 참여시키시는 부활이었다. 이 신비가 너무도 심오하기에 교회는 오늘 밤 모두 4부로 나누어 그 신비를 재현한다.

제1부에서는 빛의 신비를 거행하였다. 세상의 끝없는 어둠에 그리스도의 빛이 비치는 신비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큰 부활초에서 우리 각자의 작은 부활초로 빛을 옮겨 받음으로써, 빛이신 주님처럼 우리도 빛이 되는 신비를 재현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만이 나의 빛이라는 고백이 담긴 신비다. 어둠과 죽음으로 운명 지워진 인간이 생명의 빛이신 주님과 하나가 된 신비다. "눈으로 본 적 없고 귀로 들은 적 없는 주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에, '파스카 찬송'을 통해 주님을 찬양하였다.

제2부 말씀의 전례는 구원의 역사가 옛날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들었다. 하느님이 만드셔서 보시기에 참 좋았던 태초의 세상은 우리 삶과 신앙이 시작되었을 때의 순진무구함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게 참 좋았던 인간이 탐욕에 빠져 종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를 외면하지 않으신 하느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종살이로부터 해방시키신 사건을 탈출기에서 들었다. 이렇게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또다시 하느님을 외면한 결과 나라가 멸망하고 유배를 당한다. 이에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새로운 구원을 약속하셨고, 서간은 그 구원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였다. 이어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 살리신 하느님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게 하신 기쁨을 성대한 알렐루야로 찬미하였다.

복음은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라는 기쁜 소식을 들은 이들의 증언을 들려준다. 그 증인들은 제자들이 도망치는 상황에서도 십자가를 지켰던 여인들이었다. 무덤 입구의 큰 돌을 치울 힘도 없이 그저 사랑했던 분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기름을 바르려는 소박한 마음으로 꼭두새벽 주님을 찾은 여인들이 가장 먼저 부활의 신비를 체험한다. 부활은 물리적으로 증명된 사건이 아니라 사랑할 때 알게 되는 믿음의 진실이다. 순수한 여인들의 사랑에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라는 소식과 더불어 갈릴래아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듣는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갈릴래아가 어디였던가?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던 생업의 현장이다. 내가 살고 있는 모순과 갈등의 자리, 일에 지쳐 피곤하게 살다가 늙고 병들어가는 삶, 바로 여기가 부활하신 분을 만나는 갈릴래아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제3부 세례 예식은 이 믿기 힘든 부활 사건이 2천 년 전에 벌어지고 끝난 사건이 아니라 오늘 내 안에서 일어나는 신비임을 기념한다. 그것이 세례 성사다. 세례는 천주교 신자 자격증 수여와 같은 요식행위가 아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신비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서, 내가 어둠의 세계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건너뛰는 파스카 신비의 재현이다. 죽으면 다시 살게 되는 신비, 예수님이 죽으셨다 부활하셨듯 우리도 자신에게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는 놀라운 신비가 바로 세례 성사이며, 이 거룩한 밤에 우리는 새 세례자와 더불어 그 약속을 갱신함으로써 하느님 자녀로서의 존엄성을 되찾는다.

우리가 받는 세례 때의 약속에 우리도 부활하는 신비가 담겨있다. 첫째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죄를 끊어버립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죄란 하느님을 멀리하는 것, 즉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지 않는 태도다. 둘째로,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악의 유혹을 끊어버립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악의 유혹은 하느님 대신 자신이 모든 삶의 중심이 되려는 속임수를 말한다. 셋째로, "죄의 근원이요, 지배자인 마귀를 끊어버립니까?"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마귀란 한마디로 속이는 자, 자신이 삶의 중심이 되도록 변명으로 합리화시키는 유혹이다. 세 질문에 등장하는 죄와 악과 마귀는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본래 지닌 존엄성을 잃어버리게 하고, 삶의 중심을 흔들어 어둠으로 이끄는 세력들이다. 세례를 재현하며 우리가 받은 질문은 결국 죄악의 어둠에서 해방되길 원하느냐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우리 각자가 인격을 걸고 진실한 마음으로 답변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악의 노예가 아니라고, 어둠의 자식으로 죽어가지 않겠다고, 하느님의 자녀로 빛의 자녀로 새로 나겠다고 분명히 고백하자. 우리의 고백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게 한다.

제4부에서 성찬의 전례가 이어진다. 죽음을 물리치신 예수님은 죄와 자신에게 죽고 세례로 다시 태어난 우리 안에 현존하길 원하신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내 안에 모심으로 우리와 예수님의 일치가 이루어진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가, 살과 피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하나가 되시고, 내 삶의 현장에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을 믿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주님께 이끌려 왔으니.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내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다시 살아나셔서 결코 죽지 않으시는 당신의 은총임을 아오니 내일도 든든하기만 합니다. 주님, 주님의 이 새로운 현존 양식, 성체 성사와 교회의 생활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현존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소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하소서. 주님으로 우리의 인생이 새롭게 다시 시작되었음을 보고,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다른 것을 찾지 않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우리 사이에 계심을 알아 뵙고 기뻐하게 하소서” (C.M. Martini).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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