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원가입  |   로그인  |   오시는 길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말씀의 숲
영성의 향기 말씀의 향기 수도원 풍경 세상.교회의 풍경 기도자리
말씀의 향기

부활 제5주일 다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2-05-16 15:48   조회: 4,266회

본문

부활 제5주일 다해 - 새 하늘, 새 땅, 새 계명

 
세상이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새 하늘, 새 땅"(묵시 21, 1, 제2독서)을 갈망하게 된다. 새로운 세상에 관한 정치, 종교, 과학 등의 다양한 가설과 사람들의 열광은 역설적으로 새로움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새로운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질까? 묵시록은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라는 말씀으로 정치 경제적 변화, 군사력이나 과학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들과 함께 계실 때 이루어진다고 전한다.

복음은 하느님이 인간과 함께 계시는 길을 일러준다. 그 배경은 예수님의 최후 만찬 장면이다. 죽음을 앞두신 주님은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조금 생소한 "영광"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본래 '무거운 것, 가치'를 의미하였다. 죽음을 앞두고 당신이 영광스럽게 되었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이 외견상 슬프고 비통한 일로 보일지라도 사실은 무겁고, 값진 사건이라는 뜻이다. 성경에서 '영광'은 또한 '하느님의 거룩하심, 광명과 권능과 생명이 역동적으로 드러나는 상황, 밝은 빛'을 가리킨다.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느님의 생명과 권능이 역동적으로 밝게 드러났다는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느님이 드러났고, 하느님도 예수님 누구인지 밝게 일러주신다는 뜻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암시된다.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상 죽음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그 비중이 드러나고, 부활로 거룩하심이 밝게 드러나는 영광의 핵심은 무엇일까? 예수님은 "영광"에 관한 말씀에 이어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이르신다. 영광의 바탕은 사랑이었다. 삶에서 참으로 비중 있는 중요한 것, 밝은 빛은 사랑에서 온다. 사랑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길이었다. 돌아가신 후에도, 승천하신 후에도 주님이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길이 사랑이었다. 서로 사랑할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되고, 주님이 누구이신지 드러나고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지 밝혀지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그래서 이르신다: "서로 사랑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은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사랑을 두고 강제적인 느낌을 주는 "계명을 준다."라고 말씀하실까? 성서에서 "준다"라는 단어는 선물을 의미한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라는 말씀은 억지로 행해야 하는 강제 규정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 계명을 주신다는 의미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 유산을 남겨 주듯, 예수님은 당신이 가지고 계시던 가장 큰 재산이자 가장 무거운 보화, 당신 영광의 바탕을 우리에게 선물로 "새 계명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구약(레위 19,18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에도 이미 언급된 내용이고, 다른 문화권이나 성현들의 가르침에도 '자비를 행하라. 어질게 살아라'등의 비슷한 계명이 많은데 어찌하여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새 계명"이라고 하셨을까? 예수님 말씀만이 새 계명인 까닭은 "내가 너희를 사랑했듯이"라고 사랑의 기준을 제시하시고, 더 나아가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셨기 때문이다. 즉 우리를 사랑하기에 목숨을 내어놓으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수난은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즉 아버지를 밝히 드러내는 사랑이었고, 이에 대해 아버지가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신" 사건이 부활이었다. 수난과 부활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내어주는 사랑으로 엮여 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제 우리에게 아버지와 아들이 일치하는 사랑의 관계를 확대하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렇듯 사랑하라는 계명은 강요된 짐이 아니라, 당신께서 먼저 죽음으로 실천하여 영광을 드러내셨듯, 나도 실천할 때 세상이 달라져 새 하늘 새 땅이 시작되는 초대다.

한 신앙인의 증언을 들어보자: 어느 날 볼 일이 있어서 시내에 나갔는데 큰길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리더니 부서지는 소리도 나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얼른 뛰어가서 사람들을 헤치고 들여다보았다. 단속반원들이 샌드위치를 파는 작은 포장마차를 뒤집어엎고 있었다. 계란이 깨지고 베지밀 병이 길바닥에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처음엔 사정도 하고 울부짖으며 매달려보던 포장마차 아저씨는 모두 포기했는지 그저 멍한 표정으로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살아보겠다고 하는데 그만 괴롭혀요!" 갑자기 큰소리에 놀랐는지 단속반 아저씨들의 손길이 좀 멈칫했다. 그때, 말쑥한 차림의 아저씨가 걸어 나오더니 길바닥에 뒹굴던 베지밀 세 병을 주어 들고 멍하니 서 있던 주인아저씨의 주머니에 지폐 몇 장을 밀어 넣고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리쳤던 아주머니가 우유를 집어 들고 주인아저씨에게 돈을 지불했다. 이번에는 아기를 업은 젊은 아줌마가 삶은 계란 몇 개를 줍고 돈을 냈다. 이후에는 줄을 지어서 사기 시작했다. 어떤 할아버지는 아저씨의 어깨를 한참 두드려주다 가시기도 했다.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닌가?

새 계명을 통하여 새 하늘 새 땅을 이루는 길이 쉽지는 않다.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렇듯 아프고 힘들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갈망이 있는 한 거절할 수 없는 초대다. 보잘것없이 작아 보이더라도 사랑이 세상을 바꾼다. 사랑으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났듯, 하느님을 닮은 우리의 본 모습도 드러난다. 그 근본을 한 말씀으로 요약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르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출처] 말씀에









해뜨는 마을 l 영보자애원 l 영보 정신요양원 l 천안노인종합복지관
교황청 l 바티칸 뉴스 lCBCK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l 한국 천주교 주소록 l 수원교구
우. 13827 경기 과천시 문원청계길 56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56 MunwonCheonggyegill Gwachon-si Gyeonggi-do TEL : 02-502-3166   FAX : 02-502-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