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 하나 됨의 신비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에 이어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낸다. '위격으로는 셋이요 본체로는 하나인 삼위일체' 개념은 용어부터 생소하고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는데, 사변적인 지식보다는 성경에 드러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 그 신비를 헤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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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체험하며, 이 한계를 넘어서서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존재에 대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 첫 독서인 잠언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전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첫 작품으로 지혜를 만드시고 이어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전한다. 억압받던 노예살이에서의 해방을 체험한 히브리 사람들은 이 창조주 하느님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하느님 모습이 희미해졌다. 착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악인이 득세를 하는 세상의 현실을 보며, 하느님이 지혜롭고 정의로운 분인데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질까? 과연 하느님은 전지전능한 구원자일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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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는데 이전과 다른 새로운 말씀을 전하셨다. 당시에 구원을 받는 길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법보다도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 의롭고 열심하다는 이들에게 당신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시며 사랑과 용서를 가르치고 실행하셨다. 하느님이 성전에 계시다고 믿던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건물이 아니라 당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선언하셨다. 이승에서는 이런저런 어려움을 꾹 참고 지내다가 죽은 다음에나 하느님 나라를 갈 수 있다고 믿던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이미 사람들 가운데 와 있다고 가르치셨다.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마귀를 쫓아내시고 굶주린 이들에게 빵을 주심으로 그 나라를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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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두고 이분이야말로 진짜 예언자,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그리스도), 구원자, 종말 심판관인 '사람의 아들' 등등으로 부르며, 이제 사람이 제 모습을 되찾는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오직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뜻을 안다는 종교 지도자들과 하느님 나라가 세워지면 통치권력을 빼앗길 것이라고 겁먹은 정치인들이 야합하여 예수님을 처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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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대가 사라진듯한 이 사건의 끝에 극적인 반전이 이뤄졌다.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그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이 잇달았고, 부활하신 분을 보았다는 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은 이전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진 점이었다. 예수님을 모른다던 소심한 사람들, 두려워 숨고 도망 다니던 사람들이 돌변하여 감옥이든 형장이든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증언하며, 온전한 기쁨과 행복에 찬 생활을 하며 마치 살아생전의 예수님이 되돌아오신 것처럼 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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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저 기쁨과 열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성서 말씀에 비춰 이런 점들을 진지하게 논구하던 이들이 마침내 그 모든 사건을 풀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하였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께서 계셨구나. 예수님은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셨구나, 예수님이 감히 소리 내 부를 수도 없던 '하느님(YHWH)'인 '주님(Kyrios)'이구나, 그러니까 예수님과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그리고 하느님과 그 아들 예수님이 하나인 까닭은 예수님의 영과 하느님의 영이 하나이기 때문이구나. 이렇게 두 분을 하나로 엮어주는 하느님의 영이자 예수님의 영이 성령이구나. 그분이 태초에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숨이자, 부활하신 예수님이 숨을 불어넣으시며 받으라던 성령이시구나. 그러니까 아버지 성부와 아들 성자, 그 두 분의 영이신 성령은 하나이구나. 이 진리를 한 단어로 짧게 표현한 말이 '삼위일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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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신비는 복잡한 사변적 이론 이전에 그를 믿고 고백하는 이들을 그 신비에 참여시키는 신비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령,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라고 이르신다.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시는 진리 안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그 진리를 알려주신다는 약속이다. 삼위일체의 진리, 곧 생명을 창조하시는 아버지의 전능과, 인간을 구원하시는 아들의 사랑과, 이 모두를 하나로 묶어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일치는 바로 우리를 위한 선물이었다. 즉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만의 하나 됨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이 이루시는 일치 안에 우리가 묶여져서 우리도 성부처럼 세상에서 창조적 삶을 살고, 성자처럼 사랑으로 서로를 구원하며, 성령처럼 서로 하나가 되어 거룩해지는 놀라운 신비였다. 이처럼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가 결합되는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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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의 신비는 일상에서 우리를 초대한다. 초여름 신록의 자연에서 창조주 성부 하느님을 찬미하며, 고통과 아픔 가운데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허무와 절망의 순간에 생명을 되찾도록 희망을 북돋우시는 성령의 숨결을 기다리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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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가 일체인 신비는 우리 안에서 하나 됨의 신비로 실현된다. 겉보기에 희로애락을 겪으며 생로병사의 길을 가는 유한한 내 삶 안에는 존귀한 하느님의 숨결이 담겨있다. 겉의 나와 속의 내가 하나가 되어 하느님 자녀로 살아가라는 초대가 이 신비에 담겨있다. 더 나아가 이웃과 내가 하나가 되라는 초대다. 더불어 사는 세상 속에서 때로 미워하고 때로 그리운 나의 이웃과 내가 하나가 되면 이웃 사랑이 완성된다. 더 나아가 아름답고 놀랍고 두려운 자연과 환경이 그것을 느끼는 나와 하나가 되면 우주의 신비가 밝혀진다. 드디어 죽음으로 사라질 인간인 내가 영원하신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하느님 자녀로서 하느님의 영원성을 누리게 된다. 그처럼 삼위일체의 신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과 내가 하나가 되라는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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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대에 담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축복을 사도 바오로는 둘째 독서에서 이렇게 일러주신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