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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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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대축일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2-06-07 09:29   조회: 4,082회

본문


성령강림 대축일 -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

 


오늘은 성령께서 세상에 내려오심을 기념하는 성령강림 대축일이다. 어떤 면에서 구원의 역사는 강림(降臨), 곧 내려오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야훼 하느님 성부는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말씀으로 내려오셨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땅으로 사람이 되시어 내려오셨고, 오늘은 하느님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심으로써 강림의 역사를 완성하신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오실까? 성령께서는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강림하실까?

첫 독서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내려오시는 장면을 이렇게 전한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여기 제시된 바람, 불꽃, 혀 등의 상징을 통해 성령 강림의 뜻을 헤아려보자.

먼저 성령은 "바람"처럼 오셨다. 바람은 성경에서 숨을 의미하고 숨은 숨 쉬는 이의 영을 상징한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숨을 불어넣자 진흙으로 만든 사람이 숨을 쉬기 시작하였듯, 하느님의 영에서 인간의 생명이 시작된다.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을 받아라."라고 이르신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당신의 숨(氣, 靈)이 우리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는 성령이시다. 삶이 생기를 잃고 숨이 막힐 듯 힘이 든다면, 세상사가 기가 막힐 듯 갑갑하다면, 그때는 하느님의 숨이자 예수님의 숨인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길 청할 때이다. 내 힘으로 살기에 숨이 차고 기가 막히게 힘들지만, 하느님의 숨을 받아 예수님의 기운으로 성령 안에 살아가면 삶은 생기가 넘치고, 세상은 살맛 나는 곳으로 변화되고, 인생에는 신명나는 기쁨이 넘치게 된다.

그러기 위해 내 힘으로 살려는 생각이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한 좌절과 분노를 불태워버려야 한다. 성령은"불꽃"의 모습으로 오신다. 성경에서 불꽃은 모든 것을 정화시키는 힘이자 어두운 곳을 밝게 하는 빛이고 가슴을 관통하는 사랑을 상징한다. 과학 기술은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했다지만 사람 사이에는 제 생각만 하며 냉기가 흐르는 야박한 세상이다. 저 살자고 남 죽이면서도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어둡고 냉혹한 세상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모두 불태우고 깨끗이 씻어주는 불꽃이 필요하다. 춥고 어두운 이 세상에 서로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며 환하게 빛나는 사랑의 불꽃으로 성령께서 다시 오시기를 간청하자.

바람과 불꽃에 이어 성령은 "혀"의 모양으로 오신다. 혀는 말할 때 사용하는 신체 기관으로 성경에서는 말씀을 상징한다. 우리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성령이 혀의 모양으로 오셨다는 표현은 곧 성령께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성령을 예고하시며 "진리의 영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며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요한 16, 13-15)이라고 일러주셨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기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에게 밝게 일러주신다. 참으로 말이 많은 세상이다. 말로써 용기를 주는가 하면,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말 많은 세상에서 무엇이 나의 삶을 구원하는 말씀일까?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고 사랑의 말을 나누도록 성령께서 매일 우리에게 오시기를 간청하자.

성령이 오시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다른 언어들로 말하는데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라고 사도행전은 전한다. 소통의 놀라움이 성령 강림의 결과였다. 불통의 세상이다. 젊은이들이 쓰는 말을 노인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아내의 한탄을 남편이 알아듣지 못한다. 한쪽에서는 내 말 좀 들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쪽에서는 조용히 하라고 짓누른다. 자기 말만 옳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는 비난과 가짜 뉴스의 소음이 가득하다.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움에 우울증과 죽음이 다가온다. 이 불통의 세상에 성령께서 오시면 서로 알아듣는 소통이 이루어진다.

서로의 말을 알아듣는 성령강림의 기적은 어떻게 계속될 수 있을까? 소통은 상대에게 마음을 열 때 시작된다. 마음을 열어야 성령이 임하신다. 열린 마음에 성령이 오시면 서로가 허물을 용서하게 되고 그때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이르신다.

성령의 활동을 두고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라고 전한다. 이 말씀을 두고 치릴로 성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성령은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다. 언제나 같은 형태로 내려오지만, 논에 떨어지면 벼를 튼튼히 자라게 하고 밭에 내려서는 야채를 키우고, 산에 내린 비는 숲과 나무를 자라게 하고 강과 바다로 내린 비는 물고기를 자라게 하듯, 성령께서는 우리 각자를 서로 다르지만 제 모습대로 자라나서 한 생명 안에 엮어준다. 어떤 이에게는 자비심을, 어떤 이에게는 용기를, 어떤 이에게는 절제를, 어떤 이에게는 지혜를 각기 필요한 만큼 주신다."

그렇게 주신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에 바오로는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주십니다."라고 일러준다. 서로 다른 각자의 역할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나만을 위한 성령 강림은 없다. 자기만을 위해서 내 힘으로 애써서 혼자 잘 살아보려는 노력은 늪처럼 점점 근심 걱정으로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가득 찬 근심 걱정을 이제 성령께서 불길로 태우시길, 두렵고 부끄러운 우리 죄악을 세찬 바람으로 쓸어버리시길, 죽어가는 우리에게 주님의 숨을 불어넣으시길, 불통의 세상을 혀와 같은 말씀으로 소통시켜 주시길 기도하자. 그렇게 성령의 힘으로 서로를 받아주고 용서할 때 새로운 세상이 다가올 것이다.

"주님,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 (화답송)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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