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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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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승천 대축일 다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2-05-30 09:11   조회: 4,255회

본문


주님 승천 대축일 다해 - 크게 기뻐하며……

 
오늘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심을 기념하는 승천 대축일이다. 이를 두고 바오로 사도는 둘째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라고 설명하며, 이에 따라 사도신경은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 편에 앉으시며"라는 구절로 승천에 관한 믿음을 정리한다. "하늘에 올라"라는 구절은 승천이 우주의 먼 행성으로 떠나가심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심이고, "성부의 오른쪽"은 '하느님의 바른 자리'를 의미한다. 하느님의 바른 다스림에 자리 잡으심으로 그리스도는 새로운 방법으로 현존하신다.

주님의 승천 장면을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주님은)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면 제자들은 주님을 뵙지 못한다. 스승이 떠난 세상에 홀로 남은 제자들은, 스승이 당한 수난과 죽음이 자신들에게 닥칠까 두렵거나, 스승을 뵙지 못하게 된 현실이 슬펐을 듯한데 크게 기뻐했다니 의아하다. 주님의 승천을 본 제자들의 기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분명히 추정할 수 있는 사실은 제자들이 홀로 남겨졌다고 느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들이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고 여기기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에게 현존하신다고 믿었다 제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주님의 현존을 체험했기에 두려움이나 슬픔을 넘어서서 기쁨 가운데 하느님을 찬미했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하늘에 올라 하느님의 바른 자리에 계시는 이유는 그러한 현존 방식이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을 주기 위함이다. 이제 그분은 더 이상 '승천' 이전처럼 세상의 특정 장소나 특정 시기에 계시지 않는다. 모두를 위해 모든 역사를 관통해서, 그리고 공간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권능으로 현존하신다. 아버지 오른쪽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향해 가는 바른길을 여신다. 이 길은 지리학적 우주적 차원의 공간을 통한 길이 아니다. 자기를 폐쇄시키는 고립의 차원에서 세상을 감싸는 새로운 하느님 사랑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길이기에 마음을 통해 운행하는 길이다(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2, 참조). 이렇게 하늘 길이 열렸기에 제자들은 기뻐했다. 같은 맥락에서 요한복음서의 고별사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14,28)라는 말씀으로 떠나심을 '기쁨'과 연관시킨다.

첫 독서인 사도행전은 주님 부활 후 주님의 무덤에서처럼(루카 24,4), 승천 후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라고 전한다. 하늘을 쳐다보며 하느님의 신비 안에 감춰진 시간이나 기한을 계산하는 것이 제자들의 사명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승천을 체험한 제자들은 땅끝까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라는 사명을 받았다. 그 증언이 곧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삶이다.

어떻게 하면 기쁨 속에 주님을 찬미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기쁨을 원하지만 실제로 잘 체험하지 못한다. 바쁘게 사느라고 기쁨을 느낄 시간조차 없어 보인다. 그러나 기쁨은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적 특성으로, 특히 주님의 승천 현장에서 제자들이 받은 선물이기도 하다. "기쁨과 충만을 찾으려면, 주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셨듯이 제자들도 자신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L. Boros). 인간은 자기 자신에 집착하는 한 기쁠 수 없다. 자신을 떠나 다른 사람에게 다가감으로써 기쁨을 경험한다.

예수님이 하늘을 떠나 땅으로 내려오셨고, 또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가셨듯, 우리가 자신에게서 떠나서 타인에게 다가가 헌신하는 삶이 기쁨을 준다. 자신의 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면, 우리 안에 잠자고 있었던 넉넉한 마음이 살아나 기쁨을 느끼기 시작한다. 주님의 승천 후 제자들은 역경과 가난, 비참함과 죄를 체험하지만, 그 가운데 끊임없이 자기를 떠남으로써 "크게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여기에 그리스도교적 기쁨의 근본원칙이 담겨있다. 즉 이웃의 환난에 관심을 기울이고, 묵묵히 곁에서 짐을 나누어지는 데서 기쁨이 온다. 그렇게 다가온 기쁨은 상대방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기쁨은 주는 만큼 커진다. 이 기쁨이 주님의 승천 후 사도들의 삶에서 드러난 기쁨이었다.

주님 승천 장면을 전하는 복음을 다시 보자. "(그분께서)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24, 50-51) 강복하시며 떠나가심으로써 예수님은 강복 안에 머무신다. 강복하시는 주님의 손은 우리를 보호하는 지붕과 같다. 그분의 손은 계속 이 세상 위로 펼쳐져 갔다. 주님의 손은 동시에 하늘이 세상 안에 들어오도록 세상을 열어젖히는 몸짓이다. 손을 뻗쳐 강복하는 몸짓 안에 제자들과 세상에 대한 그분의 지속적인 관계가 담겨있다. 지붕처럼 우리를 보호하고, 동시에 우리를 하늘로 들어 올리시며, 하느님께 세상을 열어드리기 위해 그분은 떠나가심 안에서 다시 오신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뜻을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표현한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에페 1, 20-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는 그 지체인데 머리인 그리스도가 하늘에 오르셨으니 지체인 우리도 하늘에 오를 길이 열렸다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께서는 우리를 강복하시며 당신의 손을 우리 위로 펼치고 계시다는 믿음을 굳게 하며 희망에 가득 차 기쁨 속에 기도하자: "성자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인간의 품위를 들어 높이셨으니,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이 빛나는 하늘나라에, 그분의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본기도)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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