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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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 다해 -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오늘 듣는 성경 말씀은 공통적으로 겸손을 언급한다.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하시는 첫 독서에 이어 복음에서 에수님은 초대받아서 윗자리에 앉으면 나중에 망신을 당하고 끝자리에 앉으면 대접받는다고 가르치신다. 하느님께 나아가기 원하는 이들에게 교부들은 한결같이 겸손을 권고하였다. 요한 금구 성인은 "겸손은 모든 덕의 뿌리요, 어머니요, 기초다."라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모든 덕이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인데 겸손이 첫째 계단이다. 첫째 계단에 오르면 그다음에는 위로 올라가기가 쉬운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전승에 의하면 대천사 루치펠이 교만 때문에 하늘에서 땅에 떨어져 사탄이 되었기에 "마귀가 전혀 손대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겸손한 사람"(성 안토니오)이라고 한다.
하느님을 체험한 신앙인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을 낮추어야 하느님을 만난다고 고백한다. 하느님은 자신을 낮추셔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교만한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도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갖기에, 자기주장과 욕심을 채우기 급급해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자기주장에 앞서 하느님 말씀을 듣기에 형제자매들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보고, 몸을 숙여 보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낮아지는 겸손보다는 잘나 보이고 커 보이고 유능해 보이기 위해 애쓰는 자기 과시가 넘쳐난다. 겸손을 무능의 표지로 간주하는 풍토에서 겸손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예수님은 초대받으면 윗자리에 앉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라고 모욕을 당하지 않으려는 인간 심리에 근거하여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라고 이르신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예로 든 상황을 이렇게 가정해 본다. 만일 잔치에 초대받아 예수님 말씀대로 끝자리에 앉았는데, 아무도 이를 알아주지 않는다. 끝자리는 불편하고 먹을 것도 없고 창피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악한 친구가 제일 윗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그 혐오스러운 친구는 윗자리에서 기고만장하며 잘난 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별일 없이 잔치는 진행되었다. 세상에서 종종 보게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실까? 복음의 잔치는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예고한다.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제2독서) 그곳, 하느님 나라 잔치는 세상의 잔치와 다르다.
하느님 나라의 잔치는 우리를 잔치에 "초대하는 이" 곧 잔치의 주인이 계시고 그분께서 우리를 알아보시고, 제자리를 주시는 점이 세상의 잔치와 다르다. 주인이 계심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주인이 없다면, 혹은 주인이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낮은 자리에 앉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일은 헛수고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리를 잔치에 초대하셨고, 그분은 당신이 초대하신 나를 아신다. 나의 장점과 결점, 정성과 부족함, 한계와 노력 모두를 아시고 불러 주시고 받아 주시고 자리를 잡아 주신다. 그 주인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고, 땅에서도 끝자리를 차지하시어 제자들을 섬기신 분이시기에, 그분처럼 낮은 자리에서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진정한 신앙인이다. "예수님은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끝자리를 차지하셨다." (샤를르 드 푸코)
더 나아가 복음에서 주님은 우리가 잔치를 베풀 때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라고 이르신다. 주님께서 우리를 아실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분이시기에 주님처럼 우리도 자신을 내어주는 자비를 베풀라는 말씀이다. 낮아짐으로 주님을 따르는 겸손한 신앙인은 주님께서 주신 삶을 주님처럼 남들에게 내어놓는 이들이다.
말씀의 핵심은 결국 "주님"이다. 주님과 함께 하면 끝자리도 행복하고, 되갚을 길 없는 이들에게 너그러운 선행을 베푸는 것도 행복이다. 주님이 계심으로 넉넉한 이들이 신앙인이고, 이들은 하느님만으로 충분하기에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고, 어떤 처지에서든 감사하는"(1테살5, 16-18) 행복을 누린다.
"더 빨리 달리고 싶으십니까? 마지막 자리를 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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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더 사랑하기를 원하십니까? 마지막 자리를 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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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닳고 닳은 오만함으로써 아니라 사랑으로써 이루어져야 합니다." (카를로 카레토)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