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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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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일 다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2-08-15 09:58   조회: 3,856회

본문


연중 제20주일 다해 -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

 


믿는 이들은 누구나 신앙을 통해 마음의 평화와 가정의 화목을 누리기를 원한다. 그런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예수님 말씀은 듣기 거북스럽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한 가정에서 식구들이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당신은 평화를 주러 오셨고(요한 14, 27; 요한 16,33 참조) 가는 곳마다 평화를 빌어 주라(마태 10,12; 루카 10,5 참조)라고 하시던 예수님의 평소 모습과는 모순되어 보인다. 말씀의 참뜻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평화를 이야기하고, 평화를 위해 다양한 처방을 제시한다. 그런데 모든 처방이 진정한 평화를 주는지 의문이다. 거짓 안정과 거짓 평화를 줌으로써 결국에는 삶을 파멸로 이끄는 잘못된 처방도 있다. 분열을 일으키고 불을 지르러 오셨다는 말씀은 진정한 평화를 위해 먼저 거짓 평화를 깨뜨리고 불사르라는 의미로 들린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받고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지른다. 탁월한 유학자인 한형조 교수는 인간이 고통스러워하는 '상처’를 '완고함' 즉 "내가 갖고 있는 고집과 편견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흔히 외부에서 날아오는 화살로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달리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사태를 자기를 축으로 판단하는 자기중심적 완고함이 상처의 근본 원인이라는 해석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 교수는 상처를 치유한다고 위로의 방안을 다양하게 제시하는 우리 사회를 이렇게 비유했다. “요즘 위로가 너무 넘친다. 설탕을 너무 투여해서 당뇨에 걸릴 지경이다.”

분열을 주러 세상에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환자에게 힐링한다며 자꾸 설탕물을 주어 당뇨병이 생기게 할 것이 아니라, 수술을 통해 건강을 되찾게 하시려는 말씀으로 볼 수 있다. 자기중심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아프다는 이에게 진정제를 주어서 양심을 무디게 하기보다는, 환자가 아픔을 직시하여 고뇌와 갈등을 겪으며 수술을 통한 생명을 되찾게 하려는 말씀이다. 거짓과 참됨, 죽은 것과 살아있는 것, 우리를 썩게 하는 것과 새로 나게 하는 것을 분별해야 한다. 이 분별을 위해 분열이 필요하고, 자기중심적 완고함을 태워버리기 위해 불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그를 위해 오셨다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일으키시는 분열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까지 병이 들어 택시 기사가 된 한 중년 남자가 있었다. 택시 앞 유리창에 달아놓은 가족사진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삶의 용기를 내던 어느 날, 한 승객이 가방을 두고 내렸다. 가방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기사는 깜짝 놀랐다. 얼만지도 모를 큰 액수의 돈다발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사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돈 때문에 치료 한 번 변변히 못 받는 아내, 어깨를 짓누르는 빚더미, 좋은 옷 맛난 것 못 해줘 안쓰러운 아이들. '이 돈이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이 돈만 있으면….' 그의 맘속에서 욕심과 양심이 엎치락뒤치락 싸우기를 몇 시간, 그러던 그가 차를 몰아 당도한 곳은 파출소였다. 잠시 후에 연락을 받은 돈 주인이 황급히 달려와 고맙다고 꼭 사례를 하고 싶다고 말하자 운전기사가 말했다. "반나절 동안 천국과 지옥을 열두 번도 더 왔다 갔다 했는데, 이제 후련하네요." 그는 끝내 한 푼의 사례금도 받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로 남은 것이 그가 받은 사례였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가 겪은 분열은 자기 이익을 찾으려는 자기중심적 완고함과 떳떳한 아빠로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양심 사이의 갈등이었다.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획득한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까? 이 질문을 마주하여 엎치락뒤치락 갈등하는 모습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분열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이익만 찾으려는 완고함을 습관적으로 따르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욕망과 양심의 분열을 겪으며 이기심을 태우는 불길을 받아들인 그 기사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었다. 주님이 주시는 분열과 불길은 행복으로의 초대다.

성경에서 불길은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뜨거운 마음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불길은 진정한 행복을 위한 선택과 그것에 투신하는 열정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며 행동으로 살아가신 평화는 무사안일한 평온이 아니었다. 매사에 자기중심적 완고함을 제거하고 하느님의 현존을 받아들이는 역동적 평화가 예수님의 평화였다.

이 평화에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고통스러운 과정이 있으니, 자신(Ego)이 중심에 서있으려는 완고한 본능과 싸워야 하고,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 이루려는 야망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그 불가피한 싸움과 떠남은 아프지만 정화를 주는 뜨거운 불길이다. 바로 예수님 자신이 겪으신 길이었다. 그 길이 고통스러운 수난과 죽음의 길이었기에 이 불길이 "이미 타올랐더라면 얼마나 좋으랴?"라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하면 일시적 위로의 진통제나 세상과의 타협이라는 설탕물을 선택하지 않고, 악의 세력과 대결하여 이길 수 있을까? 예수님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 불을 지르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열정을 되찾고, 분열을 일으키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도 올바로 식별하고 선택할 때 우리에게 새 세상이 열린다. 그 신비를 우리보다 앞서 체험했던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 길을 따르려는 이들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제2독서)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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