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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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일 다해 -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오늘 복음은 믿음의 본질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믿음이 무엇일까? 세례를 받는 것일까? 냉담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일까? 교회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일까?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믿음은 삶의 중심을 자기 자신에서 하느님께로 바꾸는 전환이다. 한 개인이 살아가는 중심은 사람마다 다르다.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기 중심, 가족을 위해서 삶을 헌신하는 가족 중심,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 삶, 그밖에 종족이나 국가나 이념 등이 삶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복음에서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청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를 들며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라고 이르신다. 자신이 삶의 주인이 아니라 종임을 고백하는 삶이 믿음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 하고 사신 성모님의 모습에서 하느님이 주인이고 자신은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모델을 만난다.
왜 믿어야 하나? 중심을 바꾸어, 자신이 아닌 하느님이 주인이 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예수님은 믿음의 결과에 대하여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 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라고 일러주신다. 믿음은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무슨 뜻인가? 자기중심으로 살 때, 자신의 눈으로만 보고 자신의 생각으로만 판단할 때 삶의 고뇌, 사회의 부조리, 인간관계의 갈등 등은 극복할 수 없는 한계일 뿐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고, 내 말을 듣지 않아 분노하고, 내 속을 몰라줘서 실망하고, 내가 필요 없는 세상 같아 우울해지는 모습이 자기중심적 삶의 결과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면, 즉 나의 중심을 내게로부터 하느님께로 바꾸면, 이제껏 내 중심으로 볼 때 실망하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우울하게 하던 세상이 달라진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느님이 아시기에 위로를 받고, 나를 그토록 힘들게 한 원수도 하느님이 불쌍히 여기시기에 나도 용서하며, 능력이 부족하여 힘들게 살아가는 나의 한계도 하느님이 채워주심을 믿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이 이토록 나를 사랑하시기에 내 삶이 감사하고 행복해진다.
이처럼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내 중심으로 볼 때 보지 못한 신비가 보이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느낄 때 내 중심으로 느낄 때 느끼지 못한 위로와 용서와 감사를 느끼게 된다. 삶의 모든 갈등은 극복할 수 없는 벽도, 체념해야 할 팔자도 아님을 발견한다. 오히려 이 어려움들은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을 살아가게 된다. 세상의 현실은 바뀌지 않았어도 그 현실을 보는 우리 자신이 바뀌고, 이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흑인 억만장자이자 미국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하는 여성,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히는 오프라 윈프리라는 사람이 있다. 1954년생인 그녀는 성과 인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이 닮고 싶은 본보기이다.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끼고, 어려움을 극복해낼 힘을 얻는다. 그러나 그녀는 인종차별주의가 극심한 미시시피주 가난한 흑인 출신이다. 게다가 사생아로 태어나서 6살 때까지 외가에서, 13살 때까지 파출부로 일하는 편모슬하에서, 19살 때까지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이렇게 자라며 그녀는 마약에 빠지고, 가까운 친척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난잡한 성생활로 미혼모가 되고, 소녀 감호원에도 출입하는 등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강간당하고, 학대당하고, 매질 당하고, 거부당하는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어요. 임신, 생활보호 대상자인 어머니, 살이 쪄서 뚱뚱해지고, 인기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어요. 이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는 오직 하느님에 대한 믿음 하나로 이 모든 고난을 헤쳐 나올 수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흑인이다, 사생아다, 가난했다, 뚱뚱했다, 미혼모였다'라는 등 과거를 들추어 그녀를 괴롭힐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는데? 그러니까 오프라 윈프리 아냐?"라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는 하느님 중심의 믿음이 확실하기에 현실의 벽이나 사람들의 비난은 그녀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믿음이 산을 옮긴다. 이제 병들었고, 가난하고, 나이 들고, 뚱뚱하고, 능력 없고 등등 현실의 벽 앞에 설 때면 우리가 할 말이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는데? 내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면 되었잖아?"
우리는 세례로 믿음을 고백한 이들이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때로 삶에 좌절하여 체념하거나 하느님께 원망을 하게도 된다. 그럴 때 삶의 중심이 어디 있는지 다시 물어보자. 정말 자신을 종으로 생각하고, 그저 할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주인이 되려고, 커지고 높아지고 지배하려고 하기에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좌절하는 고통에 빠지지는 않는가? 자기중심으로 되돌아가곤 하는 인간 본성을 이기고 참 신앙인이 되도록, 제자들과 더불어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자.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