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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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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일 가해 -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6-04-20 13:58   조회: 5회

본문

부활 제3주일 가해 -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첫째와 둘째 독서에서는, 예수님의 수난 때 주님을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뒤 담대하게 그 부활을 선포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눈에 보이는 부활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분을 체험한 이들의 변화이다. 그 가운데서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베드로의 변화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두 제자의 이야기로, 우리가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복음은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라고 시작한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죽음에 낙담한 제자들이 낙향하던 길이었다.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던 그들은 상실의 슬픔과, 스승을 죽인 이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스승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낙담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먼저 다가오신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제자들은 이미 부활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믿지 못하고 곁에 다가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성경은 그 이유를 "눈이 가리어"라고 전한다. '가렸다'는 것은 시야가 막혔다는 뜻이 아니라, ‘생각이 고정되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제자들은 자기 생각에 예수님을 가두어 두고 있었기에, 부활을 믿지 못했고, 바로 곁에 계신 주님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눈이 가려 자기 생각에 갇힌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낙담한 이들에게 먼저 다가오신 주님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성경 말씀과 당신의 수난을 연결하여 풀어 주신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성경을 해석해 주신다. 이어지는 45절에도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라고 전한다. 여기서 성경은 구약, 곧 히브리 성서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가리키고 있었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 말씀의 감추어진 의미를 드러낸다. 이 상호 비추임의 순환 안에서 주님은 살아 계신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하였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성경 말씀의 감춰진 의미를 드러낸다. 이 순환 가운데 예수님은 현존하신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주님은 같은 방식으로 현존하신다. 사람이 되신 말씀, 곧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포함한 삶의 신비가 드러나고, 동시에 예수님의 신비가 우리의 삶 안에서 밝혀진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무덤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가운데 살아 계신다. 그러나 우리 또한 삶의 고통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눈이 가리어’ 자기 생각에 머무르기 쉽다. 그때 눈을 뜨고 자기 자신을 넘어설 길은 성경 말씀 안에 있다.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다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이 장면에서 보듯,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머무르실 계획이 없으셨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자들이 간절히 청하자 그들과 함께 머무르신다. 만일 제자들이 주님을 붙잡지 않았다면, 끝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무런 변화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주어지는 초대이다. 말씀을 통해 다가오시는 주님을 알아차렸을 때, 그분을 간절히 붙들라는 부르심이다.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라고 복음은 전한다. 이 장면은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하며, 그 기억의 재현(anamnesis)으로서의 성체 성사를 암시한다. 빵을 나누어 주실 때 제자들은 지금 여기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알아 뵙는다(현재). 그제야 이제껏 방황의 여정에 내내 함께 계셨던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기억한다(과거). 더 나아가 앞으로도 현존하실 주님을 믿기에 방황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돌린다(미래).


​예루살렘을 떠났던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신앙인의 여정을 상징한다. 성경에서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현존을, 엠마오는 세상을 상징한다. 또한 예루살렘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이 이루어진 곳으로, 그곳으로 가는 길은 곧 고난과 증언의 길이다. 제자들은 그 길을 피하여 떠났다가, 주님을 만나 다시 돌아가 부활을 증언한다. 이는 부활 신앙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을 분명히 보여 준다. 주님을 체험하면 세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하느님께로 돌리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부활은 단순히 외적으로 증명되는 사건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볼 때 비로소 깨닫게 되는 신앙의 진실이다. 우리가 겪는 절망과 낙담의 현실도, 말씀의 빛 안에서 새롭게 바라볼 때 주님을 만나는 자리가 된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말씀을 들려주시고, 빵을 나누어 주신다. 말씀과 성찬 안에서 우리에게 당신을 내어 주시는 주님과의 만남 속에서, 부활은 오늘도 계속된다.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의 삶 안에서 끊임없이 재현되어야 할 신비이다.


​이제 성경 말씀을 통해 ‘가리어진’ 우리의 눈을 뜨고, 주님을 굳게 붙들자. 그리고 성체성사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시는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자. 낙담하여 엠마오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이켜, 충실한 믿음과 굳건한 희망, 뜨거운 사랑으로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도록 은총을 청하자. 


“주님,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나이다.”(화답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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