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간 수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본문
부활 제5주간 수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포도나무에 관한 주님 말씀의 뜻은 이사야서 5,1-7의 포도밭 노래와 함께 보아야 잘 드러난다.
"기름진 산등성이의 포도밭...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들포도를 맺었네."
하느님은 포도 밭인 이스라엘을 율법을 통해 정의로 이끌며 사랑을 베풀었으나
인간은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외면하고 거짓과 불의 가득한 엉뚱한 짓만 한다.
그 결과 "울타리를 부수어.. 길가는 사람마다 그것을 잡아 꺾는"(시편 80, 9-15)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하느님께 간구한다: "이 포도나무를 찾아오소서...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15-20).
이스라엘뿐 아니라 교회와 인류가 들포도만 맺는 포도나무나 황폐한 포도밭이 되곤 한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로 오셨다고 복음은 선포한다.
이 말씀에서 무엇보다도 "참"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포도나무가 되신 하느님의 아들은 들포도만 맺는 이전의 부실한 포도나무가 아니다.
"이제 포도나무는 더 이상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다가도 부실하기에 뽑아버릴 수 있는 피조물이 아니다.
아들 안에서 하느님 자신이 포도나무가 되셨다.
하느님이 스스로를 영원히 존재의 차원에서 포도나무와 동일화했다." (베네딕토 16세)
"나는 참포도나무"라는 말씀 속에는 이처럼 강생의 신비가 놀랍게도 함축되어 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느님이 예수님 안에서 포도나무가 되셨는데,
우리가 가지가 되어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우리 역시 포도나무가 된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
가지의 존재 이유이자 소명은 포도나무 안에 머물러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 없이는 큰일을 하지 못한다'라고, '나 없이는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오늘 복음 속에 8회 반복되는 "머무르다(menein)"라는 단어의 원형은
가만히 있는 일종의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 움직임을 의미한다.
"머무르는 행위는 한 번 내려진 결단을 성실하게 관철시키는 것이다.
이 결단은 사실 언제나 새로 수행되는 것으로만 관철된다." (C. K. Barrett).
당신 안에 머무르기 위해 끊임없이 나로부터 떠나고 당신을 받아들이라는 초대를 듣는다.
나를 내보내고, 당신을 받아들임의 지속적인 순환이 나를 살아있게 하고 당신 안에 머무르게 한다.
내보내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가지는 죽은 가지로, 나무에 머무르지 못한다.
죽은 가지가 아니라 나무에 붙어 머무르는, 살아 숨 쉬는 역동적 삶으로 주님께서 초대하신다.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