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 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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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 주일 다해 -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말세, 혹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말을 흔히 듣는다. 신앙과 상관없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도덕이 무너지고 사회가 어지러울 때 말세라고들 한다. 홍수나 천재지변의 대지진 앞에서 종말이 아닐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해서 종말에 관한 비밀을 우리만 알고 있다고 자기 교회로 오라고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종교 집단도 발생한다. 오늘 복음은 말세, 혹은 종말에 관해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먼저 예수님은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또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라고 이르신다. 종말은 눈에 보이는 외부 상황이 기준이 되는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전염병, 참사, 전쟁, 태풍, 지진 등 무서운 일들과 굉장한 징조들이 일어날 때 종말이 아닐까 하고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겪는 재앙은 종말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예수님은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이르신다. 재앙 앞에서 종말을 걱정하기보다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계기로 삼으라고 호소하신다.
성 루이지 곤자가가 소년 시절에 성당 마당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만약 2분 후 종말이 온다면 어쩌겠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함께 놀던 친구들은 대부분 성당에 가서 기도하겠다고 답하였다. 그러나 성인은 “이렇게 노는 것 역시 하느님 선물이고,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니까 계속 놀겠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문다면 종말이라고 두려워하거나 별도로 특별한 일 할 것 없이, 하던 일 계속하며 하느님께 나아가면 된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은 종말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상관없이 미래에 일어나도록 예정된 고정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태도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이라는 의미로도 들린다. 물론 역사의 주도권을 전적으로 하느님께 달려 있지만, 그 하느님은 전제적 폭군처럼 마음대로 세상을 주무르며 임의로 복이나 벌을 주는 분이 아니시다. 인간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결코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지 않으시고, 다만 은총으로 부르시고 사랑으로 완성시키는 분이시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여기서 주님을 부를 때, 내 일상의 삶으로 주님을 증거할 때, 루이지 성인처럼 공을 차고 놀던, 살림에 여념이 없던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다면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을 약속하신다. 한마디로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한 태도가 종말을 제대로 맞이하는 길이다.
종말을 위협과 협박의 도구로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악마 diabolos'란 성경에서 '분열시키는 자', '속이는 자'를 뜻한다. 유사종교든 가짜 뉴스든 무심결에 휩쓸리는 뒷담화든 하느님과 우리를 분열시키고, 공동체에 분란을 가져오며, 한 개인의 마음을 분열시키는 힘이 악마다. 종말 협박에 마음이 갈라지거나 가짜 뉴스나 뒷담화로 공동체에 분열을 일으킬 것이 아니라, 현재에 충실하게 사랑하고 미래에 희망을 굳건히 하며 믿음을 증거하라고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호소한다. 참된 자유, 진정한 해방, 온전한 빛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는 하느님 사랑이 승리한다는 희망이 종말의 참뜻이다.
사목헌장(39항)은 종말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우리는 땅과 인류가 완성되는 때를 모르며, 우주 변혁의 방법도 알지 못한다. 죄로 이지러진 이 세상의 모습은 반드시 사라진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정의가 깃들이는 새로운 집과 새로운 땅을 마련하시리라는 가르침을 우리는 받고 있다. 그 행복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평화의 모든 열망을 채우고 또 넘칠 것이다. 그때에 ... 사랑과 그 업적은 남을 것이며, … 모든 피조물이 허무의 종살이에서 해방될 것이다. …이 지상에 그 나라는 이미 신비로이 현존하며, 주님께서 오실 때에 완성될 것이다."라고 천명한다.
지금 여기서 이미 시작되었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종말은 우리의 현재에, 우리의 일상생활에 의해 좌우될 하느님 나라다. 이러한 종말을 앞두고 우리가 할 일을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전한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이 말씀은 당시 일부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는데 열심히 살려고 애쓸 필요가 있나?’ 혹은 ‘예수님께서 오시면 구원을 주신다는데 애써 노력할 필요가 있나?’라는 오해와 태만에 빠졌을 때 주신 경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종말을 두려워하며 현실을 외면하고 태만이나 게으름에 빠져 무위도식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이들은 믿음으로 지금 여기에서 진지하게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며 희망에 가득 차 종말을 증언하는 사람이다.
종말은 희망이다. 세상의 악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다. 증오에 대한 사랑의 승리, 미래의 불안에 대한 현재의 충실함의 승리이다.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을 따르지 않고, 주님에게 충실하여 사랑을 실천할 때 이뤄지는 승리가 종말이다. 세상을 이긴 분은 예수님을 죽인 어둠의 세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목숨을 바치신 그리스도이시다. 그 주님께서 이렇게 이르신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복음환호송)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