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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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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일 다해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2-10-16 14:06   조회: 3,527회

본문


연중 제29주일 다해 -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복음에서 예수님은 '과부의 끈질긴 간청을 들어주는 재판관의 비유’를 통해 기도에 대해 일러주신다. 비유에서 거만한 재판관은 그 누구도, 심지어 하느님조차 두려워할 줄 모르는 인물이다. 이 재판관은 세상의 권력을 상징한다고 초세기부터 해석해 왔다. 과부는 남편도 없고 재산도 없기에 천대받는 처지에, 억울한 일까지 당한 서민이다. 변호해 줄 빽도, 청탁할 돈도 없기에 직접 재판관에게 하소연하지만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없는 이들이 당하는 막막한 세상 풍경이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거만한 재판관도 인내와 끈기로 부탁하면 그 청을 들어준다는 예수님 말씀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더욱이 하느님은 거만한 재판관이 아니니 지체 없이 들어주실 것이라는 말씀에서 희망을 갖게 된다. 각별히,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라는 말씀에서 마지막까지 믿음을 놓지 말라는 예수님의 당부를 듣는다. 성당에 다니며 기도를 해도 답변이 없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예수님이 강조하신 진정한 믿음은 어떤 것일까?

신앙인들이 자주 사용하면서 오해하고 있는 단어가 믿음이란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믿음을 바라는 대상의 확신이나 마음속 신념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과는 다르다. 신약성경에서 믿음은 피스티스라는 그리스어로 표현한다. 그 뜻은 "신뢰, 충실함, 약속, 헌신"으로, “신의 약속을 듣고 그 약속의 성취에 대한 완전한 확신과 헌신”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믿음은 내가 소망하거나 바라는 것을 갖게 되리라는 확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확실한 약속에 대한 신뢰와 헌신이라는 점이다. 구약의 아브라함이나 모세, 신약의 제자들에게 드러나듯 성경에서는 우선 하느님께서 먼저 사람들에게 오셔서 확실한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들은 사람이 약속의 성취를 확신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부른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히브리서 11, 17).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삶에서 믿음의 본보기를 찾아보자.

테레사 수녀 서거 10년 후 영성지도 신부나 지인 등에게 보낸 그의 비밀 편지가 출판되자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고 희생하던 마더 테레사는 늘 믿음으로 충만하여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편지에서 그녀는 “내 안에 너무나 끔찍한 어둠이 있다.”라고 고백한다. “끔찍한 상실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둠과 외로움, 주님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둠이 너무나 깊어서 제 마음으로도, 이성으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 안에는 주님께서 안 계십니다. 갈망의 고통이 너무나 커질 때마다 저는 단지 주님을 바라고 또 바랍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저를 원하지 않으시나 봅니다. 때로는 제 마음이 ‘저의 주님’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그 고통과 괴로움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런 편지 내용을 두고 마더 테레사가 신앙이 흔들렸다는 주장, 무신론자였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테레사는 이를 예상한 듯 “저를 알리는 모든 문서를 태우고 싶습니다. 세상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니 앞으로도 알려지기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부탁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 어둠의 상황에서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님, 제 영혼은 너무 많은 모순으로 가득합니다. 하느님이 저를 원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거부당하는 느낌에 공허함까지 계속되어 신앙도, 사랑도, 열정도 없습니다. 영혼도 저를 끌어당기지 못하고 천국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모두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느님께 계속 미소 지을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하느님만의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저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를 위로하시고 도와주소서. 침묵과 공허함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제는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혀는 움직이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력하지만 용감합니다. 제가 예수님께서 마음대로 하시게 해드리도록, 예수님이 저를 조각조각 내시더라도, 그 조각 하나하나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모두 예수님만의 것이 되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바로 오늘 복음에서 아무 의지할 곳 없는 상태에서 끈질기게 기도하는 과부처럼 테레사 수녀는 기도하였다.

십여 년 계속된 끈질긴 어둠과 간절한 기도 끝에, 테레사 수녀는 어느 날 "와서 나를 가난한 이들의 누추한 집으로 인도하여라. 와서 내 빛이 되어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리고 외친다. "십일 년 만에 처음으로 저는 어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어둠이 이 땅의 고통과 예수님의 어둠의 일부, 정말 무척 작은 일부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어둠은 신비하게도 테레사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만일 제가 성녀가 된다면 분명 ‘어둠의 성녀’일 것입니다. 언제나 어둠에 빛을 밝히러 세상에 내려가 있을 테니 천국에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한다.

어둠 속에 빠진 고통, 불신의 바닥에 떨어진듯한 절망 속에서도, 끈질기게 기도하는 과부처럼 끝까지 하느님을 신뢰하는 기도가, 마더 테레사의 어떤 뛰어난 외적 업적보다 더 고귀한 성덕이었다. 평생을 고독과 어둠 속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향해 몸부림쳤던 처절한 신앙이 마더 테레사가 이룩한 업적 뒤에 숨은 근본 동력이자 뿌리였다. 마더 테레사의 신앙은 어둠이나 불신이 없는 신앙이 아니라 어둠에도 불구하고 불신의 시련까지 껴안은 신앙이었다. 그것이 바로 곤궁한 과부가 지닌 믿음이었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라고 걱정스럽게 당부하신 믿음이었다.

누구에게나 어둠은 닥친다. 가난한 과부나, 마더 테레사뿐 아니라 우리 한 명 한 명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믿음은 희미해지고, 기도는 응답 없이 홀로 중얼거리는 것 같고, 마음은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고, 미래는 앞을 볼 수 없는 한밤중의 산속 같은 시간이 온다. 얼마나 더 견뎌야 하나? 복음의 과부가 보였던 믿음, 지적 동의를 넘어선 항구함과 충실한 헌신으로서의 믿음을 주님이 일러주신다. 신앙 안에서 어둠까지 껴안은 끈기와 항구함이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라는 주님의 물으심에 대한 테레사의 답변이었다.


 [출처]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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