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본문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헤로데는 ...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복음)
왜 착한 이들이 고통을 당하고 무죄한 이가 죽어야 하나?
모든 종교가 당면한 가장 큰 숙제인 이 질문이 강생의 기쁨 가득한 성탄 8부 축제에서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의 학살을 통해 제기된다.
"죄 없는 이의 고통은 성사적이다." (J. H. 뉴먼).
성사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볼 수 있게 드러내주는 표징'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눈으로 보게 되었기에 강생하신 그리스도를 원성사(原聖事)라고 부른다.
죄 없는 아기들의 학살은 세상에서 예수님이 살아가실 삶을 드러내기에 성사적이다.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들 역시 예수님 삶의 본질인 고통을 겪게 될 것을 일러준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죄 없이 고통 당하는 이들, 그들 곁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소리"가 여전하다.
세상은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지 못한다.
"자식들이 없기" 때문이다.
자식을 잃은 이들을 위한 참된 위로는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부활뿐이다.
부활을 통해서만 쓰디쓴 불의가 극복된다(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3 - 유년기).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독서)
인간이 겪는 고통은 그들 안에 계신 예수님의 고통을 드러내는 표징이라는 점에서 성사적이다.
오늘도 계속되는 죄 없는 이들의 절망과 한숨, 절규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한다.
거기서 사람이 되신 말씀인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드러난다.
죄 없는 이들의 고통이 주님의 수난을 드러내듯, 주님의 부활이 그들에게 드러나길 기도한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소리"에서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신 분의 초대를,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부활하라는 초대를 듣게 되기를 기도한다.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