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회원가입  |   로그인  |   오시는 길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한다.
(말씀의 길 회헌 47조 참조)
말씀의 숲
영성의 향기 말씀의 향기 수도원 풍경 세상.교회의 풍경 기도자리
말씀의 향기

연중 제4주일 가해 -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작성자 :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작성일: 23-01-30 14:47   조회: 3,135회

본문


연중 제4주일 가해 -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가난하면 세상살이가 불편하고 불행해질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듣는 말씀들은 이와 반대다. 첫 독서에서 스바니아 예언자는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라는 주님의 말씀에 이어 그들이 편안할 것을 예언한다. 둘째 독서(1코린)에서 바오로는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라며 가난한 이들을 통한 하느님의 섭리를 전한다. 더 나아가 복음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예수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는 사람" 등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선언하신다. 돈 많은 사람, 이름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세상의 가치관과는 반대가 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글자대로 받아들여 살아가면 현실에서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씀을 외면하면 위선적 신앙인이 되지 않을까? 주님 말씀의 참뜻은 무엇일까?

말씀을 올바로 해석할 열쇠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행복은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행복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란 인생이 내 손에 달려있기에 내가 개척하고 쟁취하는 행복을 말한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행복이란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요 하느님 손에 놓인 것임을 받아들여 하느님께 인생을 의탁할 때 하느님이 주시는 행복을 말한다. 과연 참 행복은 어느 것일까? 말씀의 이해를 위해 프란치스코 성인과 굽비오의 늑대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본다.  

프란치스코의 고향 아씨시 부근, 굽비오라는 마을에 무서운 식인 늑대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중무장을 한 사냥꾼을 동원하여 식인 늑대를 잡으려고 했지만 희생자만 늘어갔다. 그러자 굽비오 사람들은 성자로 소문난 프란치스코에게 해결을 부탁하였다.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프란치스코는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늑대를 찾아갔다. 늑대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자 성인은 “내 형제 늑대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니 누구도 해지지 말아라” 하고 “내 형제 늑대야, 너는 여기서 많은 손해를 끼쳤다. 너는 강도나 흉악무도한 살인자처럼 사형을 당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내 형제 늑대야, 네가 다시는 굶주리지 않도록 생전에 네가 먹을 음식을 매일 대주도록 하겠다. 네가 나쁜 짓을 하게 된 것이 배고픈 탓임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늑대야, 너도 이제부턴 어떤 사람이나 동물도 결코 해치지 않겠다고 내게 약속해 주어야 하겠다.” 하고 타이르니, 늑대는 머리를 숙여 그 약속을 한다는 표시를 똑똑히 했다. 이후 사람들은 늑대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늑대는 한 번도 사람을 해치지 않고 평화로이 살았다고 한다.

늑대는 누구인가? 서로 물어뜯고 물리는 우리가 서로에게 늑대가 아닐까? 프란치스코 수도회 민 요셉 신부는 이 늑대에 대해 깊은 통찰을 이렇게 전한다. "굽비오의 늑대에 대해 자주 떠올려봐. 그러면 늑대의 울음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와. 고독에 떠는 울음소리가 깊은 밤 들려오는 듯해. 어쩌면 늑대는 외로웠을 거야. 자신을 아무도 반기지 않고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서글펐을 거야. 사람들은 그러지. 자신을 반겨주지 않을 때 움츠러드는 대신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더욱 난폭해지고 또 강한 척하는 속성이 있어. 늑대도 그랬을 거야. 세상에 단 한 사람, 자신을 이해하려고 다가서는 그 한 사람. 얼마나 늑대가 눈물겹게 고마워했을까? 우리들도 그래.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고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그 한 사람을 가지고 싶어 해. 그렇게 가졌을 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해. 우리들은 모두 굽비오의 늑대와 다를 바 없는 처지로 살아가지. 그래서 끊임없이 그 한 사람을 기다리며 끝나지 않을 기다림을 끝내고 싶어 해 ... "

늑대가 넘쳐나는 세상(Homo homini lupus)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늑대와 함께 사는 평화로운 세상, 행복한 삶은 전문 사냥꾼이 아닌 가난한 성자 프란치스코가 가져왔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최고의 무기로 중무장한 슈퍼맨이 아니라, 하느님 손에 모든 것을 말긴 비무장의 가난하고 온유한 사람이라는 진리를 전한다. 마음이 가난한 이가 행복하다는 말씀은 수입 적은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씀이 아니다. 하느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기에 자진해서 무장을 해제한 사람, 무기가 아닌 사랑에 인생을 의탁한 사람, 그 신뢰와 사랑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씀이다.

​오늘 역설적으로 제시된 참된 행복을 누린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예수님 자신이다. 복음의 여덟 가지 행복 조건은 당신의 삶이었다. 참된 행복 선언이 모든 이에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전하신 말씀임을 유념하자. 행복 선언은 예수께서 당신을 더욱 가까이 따르려는 이들에게 당신 삶의 비결을 전수하신 것이다(H.U. von Balthasar).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가난한(kenosis) 분, 세상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슬퍼하신 분, 한없이 온유하고 자비롭고 정의로운 분, 아버지의 뜻에 목숨을 내어놓으신 분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행복을 전수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진복 팔단은 강압적 윤리 질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삶으로 드러내신 사랑이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을 통해서 드러나게 될 사랑의 신비다. 이러한 의미에서 단순히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난해지고, 낮아지고, 비우기 때문에, 그리하여 하느님이 그 주인이시기에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 행복하다.

​진정한 행복을 원하는가? 가난해지자. 무장을 해제하자. 마음의 문을 닫게 하는 선입견, 속으로 움츠려 들게 하는 열등감, 실없이 우쭐거리는 교만, 남의 일에는 아랑곳없이 자기 일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이기주의, 어떻게 해서든 이기기만 하려는 경쟁심을 모두 툴툴 털어버리고, 아무 무장 없이 빈손에 사랑의 십자가를 지자. 장정의 힘으로도, 포수의 총으로도 잡을 수 없었던 늑대가 온순하고 맑은 눈으로 우리에게 순종할 것이다. 잡아 죽이는 문화가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나누는 세상, 이기려고 하다가 황폐해지는 세상이 아니라 내어주며 풍요로운 세상, 그렇게 가난한 사람이 행복한 세상이 다가올 것이다. 그것이 주님께 피신하는 가련한 백성이 누리는 행복이고(제1독서), 약하고 무지한 우리를 택하신 분, 그 가난한 주님밖에 자랑할 것이 없는 우리들(제2독서)의 행복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출처] 말씀에




해뜨는 마을 l 영보자애원 l 영보 정신요양원 l 천안노인종합복지관
교황청 l 바티칸 뉴스 lCBCK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l 한국 천주교 주소록 l 수원교구
우. 13827 경기 과천시 문원청계길 56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56 MunwonCheonggyegill Gwachon-si Gyeonggi-do TEL : 02-502-3166   FAX : 02-502-8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