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예식 다음 목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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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예식 다음 목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독서)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씀이 주어진 시점은
히브리인들이 노예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후였다.
종살이에서 풀려난 해방이 끝이 아니라, 새 삶의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함축된 말씀이다.
해방은 거저 주어졌지만 앞으로 나아 갈 길은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어디로부터의 자유 freedom from ~"는 "어디로 향할 자유 freedom to ~"를 위해 주어졌다(E. Fromm).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
주님은 너희의 생명이시다."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하느님께서는 지시가 아닌 선택으로 제안하신다.
생명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당연한 말씀을 어째서 명령이 아닌 선택으로 제안하실까?
하느님께 인간은 종이 아니라 자유로운 자녀이기에 강제가 아닌 자발적 응답을 요구하신다.
그러면서 당신이 우리의 생명이심을 호소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복음)
죽음의 유혹을 버려야 하기에 생명의 선택이 쉽지 않지만, 선택 후 여정은 더욱 어렵다.
생명을 선택하면 생명을 주시는 분을 따라야 한다.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는 선택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생명을 되찾아주기 위해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신" 분이시다.
길이신 그분을 따라가고, 진리이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생명이신 그분과 하나가 되려면,
십자가를 지고 가신 주님을 따라서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라고 초대하신다.
"루카는 마태오(16, 24)나 마르코(8, 34)와 달리 본문에 "날마다"라는 말을 첨가하였다.
"이 말씀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항구한 법칙"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주석성경)
[출처] 말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