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간 화 -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본문
사순 제4주간 화 -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독서)
하느님의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은 피조물의 생명이 넘치게 하는 물이었다.
이 물이 모인 벳자타 못가에는 생명력을 되찾고자 소경, 절름발이, 중풍병자들이 모여 있었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복음)
38년은 더 이상 무기를 사용할 수 없고 아무것도 방어할 수 없는 사람의 상징이었다(신명 2,14참조).
(성 아우구스티노는 율법의 충만인 40에서 2, 즉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결여된 상태로 38을 풀이한다.)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은 병자들 가운데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장 뒤처진 존재를 상징한다.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뒤처진 이의 설움이 담긴 하소연이다.
체력, 학력, 경제력 등 자신의 능력이나 출신, 세대 등 사회 환경에서 뒤처져 차별받는 비애가 느껴진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38년간 지속된, 스스로는 극복할 수 없는 차별을 넘어설 길이 있을까?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는" 한을 풀어 줄 이는 누굴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예수님이 말씀으로 일으키시니 더 이상 연못 물에, 선착순의 경쟁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수였다.
주님을 만나 그 말씀을 들음이 생명수에 뛰어드는 사건이다.
말씀을 만나 생명력을 되찾은 이는 뒤처짐의 상징인 들것을 들고일어나 당당히 걸어간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라는 말씀에는 이제까지의 삶을 반복하지 말라는 당부로 들린다.
말씀에 의해 치유되었으니 이제는 인간의 관습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라는 초대다.
예수님의 치유는 육체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분을 만나 말씀을 들은 이는 말씀을 따라 삶을 바꾼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눈길을 돌린다.
그분은 누구실까?
뒤처진 이들, 모든 능력을 소진한 이들의 한숨과 절망을 품어 안으시고
당신보다 더 뒤처진 이들이 없도록 가장 뒤처진 이가 되신 분,
병자들이 누워있던 모든 들것을 다 받아서 십자가로 어깨 위에 메고 가신 분,
벳자타 연못물이 아니라 당신이 흘리신 피와 물로 우리 죄를 씻으시고 모든 것을 살리시는 분.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출처] 말씀에